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반도체 쏠림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지난 10일 현재 395조원으로, 유가증권시장 시총(1485조원)의 26.6%를 차지했다. SK하이닉스를 합친 반도체 두 종목의 시총 비중은 31.5%에 이른다. 10년 전 조선, 자동차 등 다른 주력 산업들이 한창 잘나갈 때 두 종목 비중이 14%대였던 데 비해 10년 새 반도체 편중이 얼마나 심해졌는지 알 수 있다.

이런 불균형은 경기 침체 속에서도 업황 개선 기대가 큰 반도체에만 매수세가 몰린 탓이다. 외국인은 최근 한 달간 반도체 두 종목을 2조원어치 순매수했다. 다른 주력 산업들이 글로벌 공급 과잉, 중국의 맹추격 등으로 고전 중인 것과 달리, 반도체는 메모리 세계 1위라는 ‘초격차’를 토대로 여전히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외국인·기관 사이에 “믿을 기업은 삼성전자(반도체)뿐”이라는 암묵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배경이다.

하지만 특정 기업과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면 위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대(對)중국 수출의존도가 25%를 넘는 상황에서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큰 타격을 받았듯이, 반도체가 흔들리면 국가경제가 휘청거릴 위험이 크다. 핀란드가 대표 기업인 노키아의 몰락으로 흔들렸던 사례가 남의 일만은 아니다. 미국 애플의 시총(약 1576조원)이 유가증권시장 779개 상장사 전체 시총보다 커졌지만, S&P500 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7%밖에 안 된다. 일본과 중국의 1위인 도요타자동차(6.4%)와 공상은행(5.8%)의 시총 비중도 높지 않다.

우리 경제가 위기에 내성을 가지려면 특정 기업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여야 한다. 그 해법은 다양한 산업에 걸쳐 삼성전자 같은 ‘스타’가 10개, 20개 나올 수 있는 기업 환경을 조성하는 길뿐이다. ‘MAGA(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애플)’의 미국,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의 중국처럼 쟁쟁한 상장사가 즐비한 ‘기업강국’은 한두 기업의 부침에 흔들리지 않는다.

반도체 쏠림은 달리 표현해 전통산업이 위축되고 신산업은 꽉 막혀 있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너무 잘나가니 그만 크라”는 식의 반(反)기업적 법제도부터 전면 수술해야 한다. 자산 5조원만 돼도 공정거래법상 감시 대상이 돼 온갖 규제를 받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이 정도 규모는 중소·중견기업 수준임을 정부와 정치권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게다가 해외 비중이 큰 대기업 매출을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는 국내총생산(GDP)과 견줘 ‘경제력 집중’ 운운하는 왜곡된 행태도 이제는 지양해야 한다.

신산업 분야도 얽히고설킨 규제에 가로막혀 기술, 인력, 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원격의료는 20년째 한발도 못 나가고, ‘데이터 3법’조차 1년 넘게 끌다 간신히 통과시키는 식이다. 이렇게 꽉 막힌 기업 환경에서 신산업 활성화를 기대한다면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없다. 우리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 기업들이 더 분발해야겠지만 기업을 바라보는 그릇된 시각과 고정 관념도 확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