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주치의 넘어 주치변의 시대로
우리나라 변호사 수가 지난달 드디어 3만 명을 돌파했다. 불과 13년 만에 3배가 됐다. 그러나 변호사 1인당 국민의 수는 미국, 영국, 독일 등에 비하면 아직도 2~3배 수준이다.

선진국에는 변호사가 왜 그리 많을까? 변호사의 역할이 우리보다 몇 배나 더 넓고 많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곳에는 소위 ‘예방 법률’이 성행한다. 우리나라에 예방 의학이 성행한 것과 같은 현상이 선진국에서는 일찍이 법률 분야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예방 법률이란 어떤 것인가? 일반적으로 소송을 한 번 하는 것은 암 수술을 한 번 한 것에 비유할 정도로 고통스럽다. 엄청난 비용은 물론 시간 소비, 마음고생, 거기에 패소까지 겹치면 마음에 멍이 든다. 이런 소송이 아예 없도록 하거나, 있더라도 이길 수 있도록 잘 대비하게 해주는 것, 그것이 예방 법률이다.

우선, 소송은 왜 일어나는가? 서로 간에 기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기대치가 왜 다른가? 가장 큰 이유는 애초 서로의 이해 틀이 다르다는 것이다. 예방 법률이란 처음부터 이 이해의 틀, 즉 교합이 최대한 맞도록 노력해주는 활동이다.

필자가 미국 로스쿨을 다닐 때 첫 강의를 맡았던 교수가 ‘변호사 일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렇게 갈파했다. “변호사가 하는 일의 본질은 한마디로 생각에 질서를 잡아 주는 것이다. 당신들은 법을 배우러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그 생각에 질서를 잡는 기술을 배우러 온 것이다.” 훌륭한 변호사는 이 ‘생각의 질서’를 잘 잡아 주는 사람이다

분쟁은 서로 이해의 틀이 다를 때 생긴다. 이해의 틀이 달라지는 것은 주로 상호 간 생각에 질서가 부족할 때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변호사를 가까이 두고서 한다는 것은 생각에 질서가 잡힐 가능성이 그만큼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상품을 파는 일이든, 사는 일이든, 합작이든, 화해든, 이혼이든 생각에 질서가 있으면 우리는 훨씬 지혜로운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사람의 생각에 이해관계, 감정, 희망, 두려움 등이 얽혀 있는 상황에서 혼자 그것 간에 질서를 잡기란 쉽지 않다. 이때 나와 대화하면서 객관적인 입장에서 질서를 잡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예방 법률가’다.

선진국에서는 어지간한 사람, 특히 기업인은 이른바 ‘주치 변호사(my lawyer)’를 갖고 있다. ‘주치 변호사’란 어떤 복잡한 일을 당했을 때 언제든지 편하게 만나 생각에 질서가 생기게끔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그에게 모든 것을 솔직히 이야기함으로써 상황을 객관화시킬 수 있다. 객관화란 냉정한 판단의 필수 요소다. 그가 법적으로 최대한 안전한 대비책을 마련해주는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예방 법률이 일찍부터 성행했다. 미국, 독일, 영국 등지 변호사들 가운데 소송에 참여하는 변호사 수는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다 예방 법률가다. 주위에 지적으로나 성품적으로나 믿을 만한 변호사를 신중하게 찾을 필요가 있다. 그 사람을 ‘주치변(변호사)’으로 삼아라. 이 주치변은 주치의만큼 우리 삶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변호사 3만 명 시대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 많은 변호사는 사회 전체의 ‘생각의 질서’를 증가시키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