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 기업들이 해외에서 연이어 큰 뉴스를 전하고 있다. 일본 모바일메신저 1위인 네이버 자회사 라인이 일본 최대 포털인 야후재팬과의 공동경영을 통해 구글 아마존 알리바바 등 미국과 중국 IT(정보기술) 공룡들의 아성에 도전장을 던졌다. 냉랭한 양국 관계와 무관하게 ‘한·일 IT동맹’ 결성에 의기투합한 것으로도 의미가 있다. 현대자동차는 인도네시아에 연산 20만 대 규모의 완성차 공장을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글로벌 플레이어로 떠오른 우리 기업들이 해외에서 왕성하게 활동한다는 소식이 반갑다. 세계 굴지의 경쟁기업들에 맞서 더 넓은 시장, 더 높은 영역으로 도약하는 것은 경제영토 확장이나 다름없다. 지금은 기업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인 시대다. 하지만 해외에서 한껏 나래를 펴는 우리 기업들이 왜 국내에서는 잔뜩 주눅 들고, 투자를 주저할까 돌아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경기침체의 돌파구로 기업의 활력과 투자가 절실하기에 더욱 그렇다.

올해 ‘1%대 저성장’ 우려가 커진 것도 7% 감소가 점쳐지는 투자 위축이 결정적이다. 하지만 내국인의 해외 직접투자(FDI)는 2017년 446억달러, 2018년 498억달러, 올 상반기 291억달러로 매년 사상 최대치다. 일자리가 수출되고 있는 셈이다. 이를 메꿀 외국인의 국내 FDI는 3분기까지 135억달러(신고기준)로 전년동기 대비 약 30% 줄었다. 해외로 나갔던 기업의 유턴은 한 해 10개 정도에 불과해 언급하기도 민망하다.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주저하는 이유는 경제계의 대(對)정부 건의서에 다 들어 있다. 말만 앞선 규제완화, 갈수록 경직화하는 노동시장, 세계 각국의 감세 경쟁 속에 나홀로 법인세 인상 등 투자환경은 나아진 게 없다. 오히려 환경·노동 족쇄는 ‘갈라파고스 규제’로 강화되고 있고, 강성 노조와 지역 이기주의, 반(反)기업 정서까지 더해져 투자를 더욱 기피하게 만든다. 경제 관련 법령에는 CEO를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2200여 개에 달한다. 주한 외국기업들은 한국의 규제가 국제규범과 차이가 있고, 이해당사자와 충분한 의견교환 없이 수시로 변한다고 꼬집는다. 이런 나라에 누가 선뜻 투자할까 싶다.

글로벌 무한경쟁 속에서 기업이 국적을 선택하는 시대다. 각국 지도자들이 틈만 나면 ‘투자유치 전도사’를 자처하는 이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방한해 국내 기업인들을 한껏 추켜세우며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홍보한 것이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반발을 무릅쓰고 노동개혁에 나서 ‘유럽의 병자’를 투자매력 있는 나라로 탈바꿈시킨 게 그런 예다. 문재인 대통령도 수시로 “기업 투자환경 조성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하고는 있지만 현장에선 공염불이 되는 게 현실이다.

최고의 일자리 정책은 재정 퍼붓기가 아니라 기업투자 활성화에 있다. 기업의 ‘야성적 충동’을 일깨워 ‘세금 쓰는 가짜 일자리’가 아니라 ‘세금 내는 진짜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야말로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카카오가 인터넷전문은행에 진출하자마자 고인 물 같던 은행권의 ‘메기’가 돼 엄청난 바람을 일으킨 것처럼, 어떤 분야든 기업이 뛰어놀 환경을 조성해주면 그 다음은 기업들이 알아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