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막 오르는 日 '레이와 시대'
이웃에 사는 한국인들도 고개를 갸웃할 정도로 일본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나라다. ‘왕이 시간을 지배한다’는 전근대적 관념에서 비롯된 연호(年號)를 이어가는 유일한 나라라는 점에서부터 그렇다. 영어로 ‘emperor(황제)’로 표기하는 유일한 대상도 일본 천황이다.

이런 모습은 도쿠가와 막부가 성립된 17세기 이래 면면히 이어져 온 신분사회의 전통을 반영하고 있다. 메이지유신 직전인 에도시대(1603~1867년)의 일본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은 물론이고, 지배층인 무사계급 내에서도 신분 차별이 엄격했다. 하급무사는 길에서 상급무사를 만나면 신발을 벗고 길 옆에 엎드려 예를 표해야 했다. 말 못할 차별을 겪은 하급무사들의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는 ‘존황양이(尊皇攘夷)’의 기치를 내건 메이지유신의 중요 동력이 됐다.

하지만 새로운 근대를 열겠다는 ‘유신(維新)’과 ‘천황제’는 그 자체로 모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일본 정치가들은 20세기 중반까지 “천황은 현인신(現人神·사람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 신)”이라고 주장했고, 이런 시대착오는 태평양전쟁이라는 참화를 불렀다. 패전한 히로히토가 1946년 1월 1일 자신의 신격(神格)을 부정하는 이른바 ‘인간선언’을 발표한 뒤에야 일본인은 자신들이 쓰고 있는 가면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히로히토의 뒤를 이은 아키히토 천황은 ‘평화를 이룬다’는 뜻의 헤이세이(平成)를 연호로 쓴 덕분인지 ‘근현대사에서 처음으로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시대’를 이끌었다. 아키히토의 뒤를 이어 내달 1일 즉위하는 나루히토는 1960년생으로 첫 전후세대다. 낮은 자세로 인기를 얻은 나루히토 시대의 연호로 아베 총리는 ‘레이와(令和)’를 선택했다.

아베가 ‘아름다운 조화’라고 풀이한 연호의 뜻대로 일본은 일단 축제 분위기다. 즉위식을 전후한 10일간의 황금연휴가 이번 주말 시작된다. 떠들썩한 분위기의 이면에는 새 시대에 대한 기대와 욕구도 꿈틀댄다. 천황제를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이례적인 집회가 도쿄 중심가 긴자거리에서 열릴 정도다.

레이와 시대 개막을 코앞에 두고 주초 치러진 두 곳의 보궐선거에서는 집권 자민당이 참패했다. 아베의 ‘보궐선거 불패신화’가 맥없이 무너진 점은 만만치 않은 후폭풍을 예고한다. 레이와 시대가 조화가 아니라 갈등으로 치달을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레이‘와’가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히로히토의 연호 쇼‘와’처럼 우경화 의지를 담고 있다는 주변국의 의구심도 크다. 여기에 아들이 없는 나루히토의 상황도 큰 변수다. 한국이 과거사에 매달려 허송세월하기에는 일본 내의 변화가 너무 가파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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