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용 컴퓨터를 때로는 단말기(端末機)라고도 적는다. 중앙의 처리장치로부터 가장 끝에 놓여 정보를 입출력하는 장치다. 중앙에서 볼 때 끝에 놓여 있다는 뜻에서 한자 단말(端末)로 표현했다.

“용모 등이 단정하다”고 할 때 ‘단정’의 한자는 端正이다. 여기서는 반듯한 모양을 일컫지만 端(단)이라는 글자의 핵심적인 새김은 ‘끝’이다. 그러나 단순한 ‘끝’은 아니다. 눈에 띄게 드러난 부분, 또는 아예 처음과 끝이라는 새김도 묻어 있다.

緖(서)는 우선 양잠(養蠶)과 관련이 있다. 비단을 뽑으려면 먼저 누에의 고치를 삶아 실을 골라내는 작업이 핵심이다. 둘둘 말린 고치에서 명주실의 가닥을 잘 잡아내야 하는데, 이를 한자로는 索緖(색서)라고 적는다.

가닥을 잘 잡았으면 실에 붙어 있는 잡티 등을 제거하는 일이 따른다. 그를 理緖(이서)라고 한다. 아울러 실 가닥을 합쳐서 좀 더 야무진 실로 뽑아내야 하는데, 그 작업이 集緖(집서)다. 따라서 緖(서)는 실 가닥 내지는 실의 줄기 등의 새김이 분명하다.

아울러 뭉쳐 있는 실타래를 풀어갈 수 있는 게 실의 꼭지다. 이 가닥을 잘 잡아 풀면 타래의 뭉침은 술술 풀어진다. 그래서 문장의 시작을 緖言(서언, 序言과 같다) 또는 緖論(서론), 싸움의 시작을 緖戰(서전)으로 적는다. “두서가 없다”의 두서(頭緖)도 마찬가지다. 뭉친 실처럼 갈래가 많은 마음을 적는 한자 단어는 정서(情緖)다.

단서(端緖)라고 할 때 먼저 떠오르는 순우리말은 ‘실마리’다. 이리저리 엉킨 실타래의 처음이자 끝인 그 가닥을 잘 잡아야 실을 풀어갈 수 있다. 그 ‘단서’를 잡아내지 못하면 엉킨 실타래는 칼로 끊지 않는 한 풀어갈 수 없는 법이다.

마구 꼬여 있어 칼로 베어내야만 하는 경우의 성어가 일도양단(一刀兩斷)이다. 가장 극단적인 상황이다. 그렇게 일이 꼬이기 전에 단서를 찾고 두서를 잡아 꼬임을 풀어야 좋다. 우리의 내년 경제 상황은 어떨까. 실마리를 찾는 색서, 고르는 이서, 다시 합치는 집서의 과정이 다 가능할까. 아니면 칼로 잘라서라도 흐름을 되돌려야 할까. 고민은 더 깊어질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