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를 앞장서 이끄는 대기업들이 사장단·임원 인사를 속속 발표하고 있다. 올 인사의 키워드는 ‘군살 빼기’와 ‘성과 보상’으로 모아지는 분위기다. 삼성그룹은 반도체 호황으로 사상최대 실적을 냈지만, 승진자를 지난해보다 30% 줄였다. LG그룹은 전자 유플러스 생활건강 등 주력계열사 5곳의 성장을 이끌어 온 간판 최고 경영자들을 유임시켰다. 위기 대응 차원의 전열 정비라는 게 기업들의 설명이다.

성과 보상도 뚜렷하다. 삼성전자 승진 임원의 절반 이상이 최고의 성과를 거둔 반도체 부문에서 나왔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최고기술상인 ‘인텔상’을 세 차례 수상한 50대 실력파를 CEO로 선임했다. 또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은 미래 사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다. 보수적 기업문화의 LG는 ‘순혈주의’ 관행을 깨고 외부 인재를 적극 수혈했다. 로봇 자율주행 등 신산업을 추진할 조직도 확대했다. SK그룹 핵심 계열사들도 차세대 산업 연구 역량을 대폭 강화했다.

기업들의 발 빠른 위기 대응과 미래 준비를 보노라면, 위기 불감증에 빠진 정부 모습이 자연스럽게 대비된다. 경제 지표가 곤두박질치고, 고용참사와 양극화가 심화되는데 정부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대응이 굼뜨다. 무리하게 밀어붙인 최저임금 인상, 주52시간제 등의 후폭풍으로 산업단지 내 공장 불이 꺼지고, 골목상가 폐업이 급증세지만 돌려막기식 미봉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어려우니 대기업이 이익을 나눠주고, 자영업이 힘드니 카드사들이 수수료를 낮춰주라는 식이다.

기업은 사활을 걸고 있는데, 정부 태도에서는 절박함을 찾아보기 힘들다. 더딘 규제개혁에서 잘 드러난다. 말로는 혁신성장을 외치지만 첩첩 규제는 꿈쩍 않고 있다. 오죽했으면 “신산업으로 성공하려면 해외로 나가야 한다”는 말이 회자될까. 규제를 ‘찔끔’ 완화하며 생색낸 뒤, 돌아서서는 덩어리 규제를 만드는 일도 반복되고 있다. 정부 여당이 추진 중인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만 봐도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등 다른 나라에 없는 시대착오적 규제가 한둘이 아니다. 국내에 진출해 있는 외국기업 CEO들이 모여 ‘갈라파고스 규제’ 폐지 요청 성명을 낼 정도다.

그나마 내놓는 대책이 세금 퍼붓기, 보조금 뿌리기 같은 대증 처방인 점이 더 큰 문제다. 실업자가 늘면 실업예산 늘리고, 일자리가 모자라면 ‘알바’ 만드는 식이다. 공기업을 동원한 ‘빈 강의실 전깃불 끄기’나 ‘이틀짜리 알바’ 같은 엉뚱한 대책이 한둘이 아니다. 내년 슈퍼예산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혈세가 사막에 뿌리는 물처럼 사라질지 걱정이 커진다. 그래도 정부는 ‘실업을 잡겠다’며 일자리 담당 조직과 위원회를 신설해 나가고 있다. ‘큰 정부’가 아닌 ‘유능한 정부’로 불러 달라는 주문이지만, 이대로라면 무능하고 거품만 키우는 정부라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