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국내 간판 기업들이 아직까지 내년 사업계획도 못 짜고 있다고 한다. 한경이 10대 그룹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초안을 마련한 곳은 한 곳에 불과했고 9곳이 아직 밑그림조차 그리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하다. 미국이 본격적인 긴축에 들어갔고 신흥국 위기는 장기화할 조짐이다. 미중 무역갈등은 날이 갈수록 격화하는 양상이다. 이런 와중에 국내에서는 기업을 옥죄는 규제가 날로 강화되고 있다. 지배구조, 일감 몰아주기 규제부터, 기업 경영권을 위협하는 상법 개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에 이어 친노동 정책 기조는 더욱 공고화될 조짐이다.

안팎으로 온통 불확실성투성이인데 어느 기업이 제대로 내년 사업계획을 짤 수 있겠는가. 투자는커녕 기업을 지금 상태로 지켜내는 데만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기업 경영의 최대 적(敵)은 불확실성이라고 한다. 설사 악재라고 하더라도 예측 가능한 것이면, 그에 맞춰 전략을 수립하고 대비하면 된다. 하지만 불확실성에는 말 그대로 대책이 없다. 삼성전자는 내년 영업이익을 올해보다 약 10% 낮춰 잡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이마저 확정하지 못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아예 백지 상태에서 다시 계획을 짜야 할 판이라고 한다.

불확실성 중에는 대외변수처럼 어쩔 수 없는 것도 있지만 정책에 따라 얼마든지 축소 내지는 해소할 수 있는 것들도 적지 않다. 노동규제부터 그렇다. 그런데도 조만간 열릴 대통령 주재 경제관련 회의 주제가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등이라고 한다. 대기업의 잘못된 관행 개선도 필요하지만 지금은 어떻게든 불확실성을 줄여 기업을 뛰게 만들어야 할 때다.

고용과 투자가 곤두박질치는 것도 불투명한 미래가 낳은 결과다.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한국에서 더 이상 제조업하기 어려워졌다”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불확실성을 걷어낼 범(汎)정부 차원의 정책 로드맵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