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脫)원전 정책으로 인한 원자력발전 생태계 붕괴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국정감사 제출 자료에 따르면 원전 관련 핵심업무를 수행하는 한국전력기술(설계), 한국수력원자력(운영), 한전KPS(유지·보수) 등 3개 공기업 원전 인력의 자발적 퇴직자만 지난해부터 올해 8월까지 205명에 달했다. 원전 인력의 해외 유출도 가시화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로 떠난 핵심 인력만 14명이고, 전체 해외 이직 숫자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인력 유출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상황은 전혀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 탈원전이 장기 로드맵을 따르기 때문에 당장 심각한 게 아니라는 정부 설명도 그렇다. “원전 건설이 5년 중단되면 원전 관련 공급 사슬의 절반 이상이 줄어들고, 10년 중단되면 회복이 불가능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는 또 원전 수출을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가뜩이나 경쟁이 치열한 글로벌 시장에서 ‘탈원전’을 외치는 나라가 수주를 늘린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결국 수출마저 더는 가망이 없다고 판단되면 가시화되기 시작한 인력 유출이 ‘인력 엑소더스(대탈출)’로 번지지 말란 법이 없다. 이는 곧 국내 원전산업 생태계의 완전한 파괴를 의미한다.

지금은 국내 원전 인력이 UAE로 빠져나가고 있지만 앞으로는 중국으로 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원전 건설을 늘리는 중국이 새 원전 개발에 나서면 국내 원전 인력에 러브콜을 보낼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국이 탈원전으로 가면서 중국·러시아가 글로벌 원전 시장의 강자로 등장한 데 이어 궁극적으로는 중국 주도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게 사실이다. 인력 유출을 방치해 국내 원전산업 생태계가 무너지면 ‘원전 굴기’를 선택한 중국에 손을 벌릴 날이 올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