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영 칼럼] 기업 포용해야 분배도 개선된다
세계 경제 회복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에 대한 불안과 우려는 점차 더 커지고 있다. 성장은 물론 고용과 투자 등 거의 모든 경제지표가 경고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성장은 반도체에 의존해 겨우 3%를 유지하고 있지만, 무역분쟁 등 수출 여건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은 사람 구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완전고용을 구가하고 있는데, 한국의 청년실업률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을 앞세운 분배정책에도 불구하고, 빈부격차는 갈수록 더 확대되고 있다. 정부 통계에서도 하위 20%의 가계 소득은 작년보다 8.0% 줄었지만, 상위 20%는 오히려 9.3% 늘어났다. 설상가상으로 미국과의 금리 격차로 자본유출이 현실화되고 있지만, 경기 침체와 가계부채 탓에 금리 조정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정작 투자의 주체인 기업은 또 다른 불안에 떨고 있다. 대기업은 적폐 대상으로 몰려 숨쉬기조차 어렵다고 하고, 중소상공인은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규제 완화는 말만 무성할 뿐 수십 년째 제자리걸음이니, 아예 사업을 접거나 투자환경이 우호적인 해외로 떠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 주도의 경기 활성화를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일자리가 없어 소외계층의 삶이 핍박해지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이 땅에서 과연 자유로운 시장 체제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회의론도 일고 있다. 기본적인 소유와 경영에 대한 압박이 날로 더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직접 나서 계열사 매각과 지분 조정, 노동이사제, 집중투표제 등을 종용하고, 국민의 노후를 보장하기 위한 저축으로 기업을 통제하는 연금사회주의 정책이 등장하기도 한다. 일부 대기업을 KT처럼 주인 없는 법인으로 만들어 정부가 통제하려 한다는 의구심이 제기되기도 한다. 게다가 65%에 달하는 높은 상속·증여세로 세대 간 사업 승계도 만만치 않다. 대주주에게 차등의결권을 부여하고 법인세 대폭 인하를 추진하는 일부 선진국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현실이다. 이런 여건에서 자유로운 시장 체제의 지속성에 대한 의문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한편으로는 문재인 정부의 우호적인 정책에도 불구하고 근로자와 시민단체의 불만은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 대기업의 횡포가 여전하고, 근로자의 후생과 복지가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 개혁에 대한 주문은 더 강력해지고, 노동단체의 투쟁 수위도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노사갈등은 물론 보수와 진보의 대립, 적폐청산의 후유증 등 다양한 계층의 민원(民怨)으로 광화문은 여전히 소란스럽기만 하다. 남북한은 몇 번씩 껴안으며 화해하는데, 남남(南南) 갈등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조선, 자동차 등 전통 제조업부터 휘청거리고 있으니 한국 경제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울산에서 거제, 창원, 군산 등이 고용재난지역으로 지정돼 한국판 러스트벨트가 확대일로에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전체 상장사 이익의 35%를 차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체감경기는 경제지표에 나타난 수치보다 훨씬 더 참담한 모습일 것이다. 아무리 소득이 성장을 주도한다고 믿는다 해도, 지금은 분배할 소득의 원천이 말라가는 형국이다. 그렇다고 부자 증세를 강화해 재정 지출로 시혜를 베푸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지 않은가.

기업을 포용해 민간부문을 활성화시켜야 고용과 소득이 늘어나고 분배도 개선할 수 있다. 일자리보다 더 바람직한 복지정책이 어디 있겠는가. 실업이 늘어나면 소외계층부터 타격받기 때문에 분배도 악화되기 마련이다. 세계 각국이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펼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은 다양한 남남 갈등을 화해와 포용으로 승화시켜 후생과 분배를 동시에 개선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기업인의 일탈을 제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의 부작용도 경계해야 한다. 개혁의 여파로 산업현장이 붕괴되고 일자리가 사라진다면, 분배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