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글로벌 시대 단상
누구나 글로벌 진출을 외친다. 국내 바이오제약 시장만 보더라도 글로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로 매우 낮기 때문에 대다수 바이오제약 기업은 미국과 유럽 등 해외 시장으로 진출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자국 시장에서 성공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동일한 제품이 세계 시장을 석권하리라는 생각은 매우 안이한 발상이다.

수년 전 필자는 사업차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메디톡스는 해외 진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던 터라 중동 시장 진출도 별 무리 없이 진행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미처 생각하지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중동을 비롯한 이슬람 시장 진출 시 당연히 생각해야 하는 할랄(Halal) 인증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바이오 의약품이 아무리 품질이 우수하고 가격경쟁력이 있더라도 할랄 인증이 없으면 판매 기회조차 얻을 수가 없다. 메디톡스가 만든 보툴리눔 톡신 제제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자신감만으로 진출 국가에 대한 검토를 면밀하게 하지 않았던 결과였다.

물론 이 경험이 보약이 돼 곧장 한국으로 돌아와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제조공정에 사용되던 동물성 세균 배양 배지를 비동물성으로 바꾸는 데 성공해 지금은 이슬람 시장 진출을 다시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슬람 문화를 철저히 검토했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아낄 수 있었다는 아쉬움은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는 국가 간의 경계가 흐릿해져 가는 이른바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교통과 통신 기술 발달에 따라 국가의 물리적 경계를 넘는 교역과 교류가 활발해진 것은 물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인식과 문화 또한 전 세계로 확장돼 나가고 있다.

하나의 원칙과 관점만을 고수하는 편협한 태도는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게 됐다. 오늘날엔 같은 현상에 대해서도 처한 환경과 문화에 따라 다양한 관점이 존재할 수 있고, 그 다름을 존중하고 인정할 수 있는 다원주의적인 태도가 요구되는 것이다. 다원주의가 상대주의를 의미하지는 않듯이 글로벌화에 따른 시대적 요구가 각자의 고유한 문화와 가치를 버리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모든 국가와 사회는 자기들만의 문화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오늘날의 글로벌 시대에는 하나가 돼야 한다고 무작정 외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문화와 가치를 이해하고 준비하는 태도가 필요함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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