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국회 3당 체제와 보수정당이 사는 길
“보수는 죽었다”고 한다. 하지만 ‘보수의 사망’을 선언하기에 앞서 보수가 무엇인지 정의할 필요가 있다. 보수와 진보는 사회 발전과 변화에 대한 개인의 사고와 태도가 다르기 때문에 생겨난다. ‘보수적 사고’ ‘진보적 사고’ ‘보수적 태도’ ‘진보적 태도’라는 용어들에서 보듯이 사고와 태도를 설명할 뿐 ‘보수’ ‘진보’가 특정한 사상체계를 가진 것은 아니다. 그래서 진보주의라는 이념(ism)은 없고, 보수주의가 있지만 이념이라기보다는 사고방식, 생활양식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전통, 제도, 법을 근본적으로 변혁해 나아지게 하자는 쪽은 진보이고 전통, 제도, 법을 안정적으로 유지·보존하면서 개량·개혁해 나가자는 쪽은 보수”라고 정의한다. 이렇게 보수는 개량과 개혁을 거부하지 않기에 수구(守舊)와 다르고 퇴보적이지 않다. 대한민국 보수는 6·25전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국가를 건설했다. 그리고 산업화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

유럽사에서 보수와 진보는 자유와 평등에 대한 견해 차이로 발전해왔다. “평등을 중시하는 사회주의자들을 진보로, 자유를 주장하는 시장주의자들을 보수”로 분류한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은 유럽과 다르게 ‘대북정책에 대한 견해 차이’로 보수와 진보를 구분해왔다. 최근까지 여론조사기관은 북한을 대화와 협력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는 세력으로 인식하면 진보, 대화와 협력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전체주의 세력으로 인식하면 보수로 분류했다. 이 기준에 의하면 인권에 대해 적극 활동하면서도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진보단체의 모순이 설명 가능해진다. 사실 이들은 이념적으로 좌파집단인데 진보단체라는 이름으로 잘못 붙여져 사용됐기 때문에 생겨난 명칭의 혼란이다.

좌파집단은 해방 이후 자신들의 좌파이념을 탈색해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내겠다는 목적으로, 또 6·25전쟁 이후에는 ‘반공’이 국시로 된 불리한 상황에서 자신들의 이념적 정체성을 감추려고 ‘좌파-우파’ 대신 ‘진보-보수’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여기에 극우(極右)를 보수로, 극좌(極左)를 진보로 표기한 일본식 용어 사용법을 무분별하게 도입해 관행화한 한국 언론의 책임도 크다. 정당의 이념을 보수, 진보로 지칭하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의 공화당은 보수적 성향을 보이지만 핵심 가치는 ‘공화(the republic)’에 있다. 그리고 ‘중도’라고 하면 좌-우의 중간이지, 보수-진보의 중간이 아니다.

최근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보수는 나라의 근본인데 보수가 없으면 주축이 무너지는 것”이라며 “대한민국에서 보수당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일 뿐 보수는 굳건하다”고 진단했다. 보수정당을 자임하는 자유한국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질책이다. 하지만 국회의 사정을 일면 모르는 말씀이다. 국회의 정치는 과반을 누가 가지느냐는 숫자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의석수 30석의 바른미래당이 공식 출범하며 국회의 정치가 4당 체제에서 3당 체제로 바뀌었다. 바른미래당이 정강정책과 당헌에서 진보, 보수, 중도를 모두 빼고, ‘햇볕정책’도 넣지 않았다. 대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 한반도 평화통일을 지향한다’를 넣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정규직화, 탈핵 등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며, 안보에서는 “미국에 당당히 핵 공유 협정 체결을 요구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이쯤 되면 경제는 평등에서 벗어나 있고, 안보는 보수다. 작년 가을부터 진행된 정계개편의 완결이지만 보수·우파에는 큰 힘이 될 수 있는 세력이 생긴 것이다.

이제 총선과 대선 연속 패배에서 벗어나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한국당이 바른미래당과 선거연합, 정책연합을 시작할 것을 권고한다. 선거연합으로 현재의 지지율로는 어림도 없는 단체장 6곳을 지켜낼 수 있다. 정책연합으로 국회 과반을 확보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하는 헌법 개정을 막아낼 수 있고 국회의 주도권을 상당히 회복할 수 있다. 지방선거에서 승리해야 ‘홍준표 브랜드’의 신보수 정치를 펼칠 수 있고 지지율이 높아지고 한국당에 기회가 생긴다. 홍 대표가 대선에서의 구원(舊怨)을 털어버리고 안 전 대표, 유승민 의원을 끌어안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보수정당을 살리는 길이라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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