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스타트업들이 갈망하는 정치인
요즘은 누굴 만나도 ‘국정농단’ 얘기다. 취재원을 만나 업계 정보를 들어야 하는 기자로선 답답한 노릇이다. 투자수익률이 높기로 소문난 한 벤처캐피털(VC) 대표를 만난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정부를 비난하는 대신 이런 얘기를 했다. “이 사건이 시작된 건 정부가 기업으로부터 돈을 뜯어내면서부터죠. 그런데 어떤 정치인도 ‘나는 앞으로 절대 기업에 돈을 뜯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아요. 기업이 사업만 하게 내버려두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바로 그에게 표를 던지겠어요.”

그는 VC를 운영하면서 자신이 투자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들이 정부의 각종 규제와 간섭, 때로는 ‘시비’에 고생하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봤다고 했다. 포지티브 규제(원칙금지, 예외허용) 시스템인 한국에서는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기본적으로 스타트업이 하는 새로운 비즈니스는 모두 불법이 될 수밖에 없다. 규제 외에도 조금만 매출이 늘어나면 수시로 불러내 각종 심부름을 시키는 정부, 국회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스타트업 대표도 한둘이 아니다.

스타트업 사람들도 물론 저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 하지만 정치와 기업 간의 관계가 주제가 되면 한결같이 하는 얘기는 하나다. “사업만 하게 좀 내버려둬 달라”는 것이다.

국내에서 스타트업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성공한 스타트업 대표들은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에겐 연예인이나 다름없다. 지난 11월 한국경제신문사가 주최한 ‘글로벌 인재포럼’에 참석했던 새라 리 글로우레시피 대표는 그날 사인해 달라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식사를 제대로 못할 정도였다. 이들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잘 활용한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의 SNS 팔로어 수는 30만명이 넘는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조기 대선 국면이 전개되면서 대권 주자들이 하나둘 자신의 정치 철학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포지티브 규제 시스템을 과감하게 ‘네거티브 시스템(원칙허용, 예외금지)’으로 바꾸겠다는 사람은 아직 없다. 규제를 풀고 기업들에 대한 간섭을 최소화하겠다는 후보만 있다면, 스타트업 종사자들은 그를 지지할 의사가 있어 보인다.

남윤선 IT과학부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