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해온 러시아가 미국과의 핵무기 감축 합의사항을 어기며 핵사찰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되는 시점 전후로 대규모 공격을 가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러시아의 반격이 본격화하자 미국은 처음으로 우크라이나에 사거리 150㎞인 로켓포를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우크라 돕는 美에 뿔난 푸틴, 핵사찰 거부

“러, 핵사찰 거부하며 불만 표출”

3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이날 의회에 러시아가 미국의 핵사찰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미국과 러시아는 2010년 보유한 핵무기 수를 줄이기 위해 신전략무기 감축협정(New START)에 서명했다. 양국의 핵탄두 수를 1550개 이하로 줄이고, 핵 시설에 대한 상호 사찰을 허용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양국은 2020년 3월 코로나19 확산으로 상호 간 사찰을 잠정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개선된 뒤에도 러시아는 계속 사찰을 거부하고 있다. 주미 러시아 대사관은 지난해 8월 “핵사찰을 재개하려면 먼저 러시아를 상대로 한 미국의 항공 제재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엔 러시아가 코로나19를 핵사찰 거부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론 미국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는 것으로 미국은 보고 있다. 국무부는 의회 보고서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지원을 주도하는 미국에 대한 불만 때문에 핵사찰을 거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2021년 양국의 협정 만료 시한을 2026년 2월까지로 연기하는 데 합의했지만 추가 연장 협상에는 비협조적으로 나오고 있다. 지난해 11월 말 조약 이행을 위한 양자협의위원회(BCC)를 열 예정이었으나 회의 직전 연기를 통보했다. 또 2026년 기간 만료 후 대체 조약 없이 종료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최근 인터뷰에서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적대정책을 바꾸지 않는다면 원하는 것을 이루기 힘들 것”이라고 위협했다. 지난해 12월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했다.

미, 우크라에 로켓포 지원

미국은 우크라이나 동부 바흐무트 등에서 전투가 격화하자 우크라이나에 추가로 무기를 지원할 계획이다. 패트리엇 미사일과 에이브럼스 전차를 주기로 한 데 이어 이번엔 고성능 로켓포를 제공할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미군 소식통을 인용, 미 국방부가 이런 내용을 포함한 20억달러(2조4600억원) 규모의 무기 공급 패키지 방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은 이번에 사거리 150㎞인 지상 발사형 소구경 폭탄(GLSDB) 시스템과 다연장로켓시스템(GMLRS) 등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방침이다. GLSDB는 지상에서 발사하는 공대지 유도폭탄으로, 위성항법장치를 장착해 정밀 타격이 가능하다. 로이터는 사거리가 150㎞인 로켓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건 처음이라고 전했다. 미 국방부는 지난해 11월부터 우크라이나에 GLSDB를 공급하겠다는 보잉사의 제안을 검토해왔다. 다만 우크라이나가 지원해달라고 요청한 전투기와 장거리 미사일은 이번 대상에서 제외됐다.

한편 러시아가 이달 대규모 공습을 감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올렉시 다닐로프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회의 사무총장은 이날 영국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최대 규모의 공격을 준비 중”이라며 “침공을 개시한 지난해 2월 24일처럼 우크라이나 남·북·동쪽 세 방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