껌값?…49년간 4조원어치 팔린 롯데껌
한국인들은 1967년 국내산 껌을 처음 맛봤다. 롯데제과가 쿨민트 등 여섯 가지 제품을 내놓은 것. 5년 뒤 대형 히트제품이 나왔다. 쥬시후레쉬, 후레쉬민트, 스피아민트 등이었다. 이때 나온 광고가 “껌이라면 역시 롯데 껌”이었다. 아직도 이 광고문구와 멜로디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이후 롯데는 한국 껌 시장을 지배했다. 49년간 롯데제과는 껌만 4조원어치를 팔았다. 일렬로 늘어놓으면 1320만㎞로, 지구 둘레를 330바퀴 돌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약 5100만명)이 하루에 한 개씩 약 10년간 씹을 수 있는 분량이다. 롯데껌은 49년간 한국인과 함께했다.

◆고급 기호품에서 ‘껌값’이 된 껌

1960년대와 1970년대 껌은 쉽게 씹을 수 있는 제품이 아니었다. 1967년 롯데제과가 쿨민트껌을 내놓았을 때 가격은 2~5원. 당시 짜장면값이 20원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결코 싸지 않은 가격이었다. 그래서 껌 하나를 반으로 나눠 씹기도 했고, 씹다가 만 껌을 다시 씹는 일도 많았다. 산업화 초기 껌은 단맛을 통해 서민의 배고픔을 달래주고, 심심할 때 즐거움을 주는 유일한 디저트 역할을 했다.

1980년대 초까지도 껌은 귀했다. 1980년 창립 1주년을 맞은 롯데백화점이 사은품으로 껌을 증정할 정도였다. 당시 롯데백화점은 5000원 이상 구매한 고객에게 50원짜리 껌을 나눠줬다.

귀한 껌이었던 만큼 광고모델도 당대 최고 배우나 탤런트를 썼다. 원미경(1981년), 채시라(1985년), 이상아(1986년), 음정희(1991년) 등 내로라하는 톱스타들이 껌 광고를 찍었다. 롯데제과 측은 “지금의 화장품 광고처럼 톱스타들만 찍을 수 있는 광고가 껌 광고였다”고 말했다.

1980년대 중반 경제가 발전하고,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껌을 나눠주는 식당이 생겨났다. 이 과정에서 껌이 충치의 원인이 된다는 비판도 나왔다. 롯데제과와 해태제과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노타임껌, 노노껌 등 설탕을 줄인 기능성 껌을 내놓기도 했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는 씹다 버린 껌이 길거리를 더럽힌다는 이유로 ‘껌떼기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국민 디저트 껌의 추락이 시작됐다.

◆치매 예방 돕는 건강식품으로

1990년대 들어 껌의 인기는 떨어졌다. 서울올림픽 이후 사회가 개방되면서 빵, 케이크 등 다양한 디저트가 등장했다. 껌은 ‘유일한 디저트’ 자리를 내놓았다. 이 시기 나온 껌에 대한 말들은 이런 사회상을 반영한다. ‘껌값이다(값이 싸다)’, ‘껌 좀 씹었다(불량학생이었다)’, ‘껌이다(일이 쉽다)’ 등이 그런 말이다.

껌은 2000년대 반격을 시작했다. ‘게임체인저’는 자일리톨이었다. 충치 예방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자일리톨껌이 출시되면서 껌은 다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포장을 기존 껌과 달리 알약 모양으로 바꾼 것도 성공적이었다. 자일리톨은 2002년 18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국민껌’으로 떠올랐다.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자일리톨은 꾸준히 팔리고 있다. 시장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제과업계에서 1000억원 이상 연 매출을 올리는 제품은 롯데 빼빼로와 자일리톨, 오리온 포카칩 등 3개뿐이다.

2010년 이후 특별한 인기 상품이 없어 제자리걸음을 하던 껌 시장은 지난해부터 다시 커지고 있다. 껌을 많이 씹으면 건강에 좋다는 연구가 잇따라 나온 영향이 컸다. 껌을 오래 씹으면 어린이의 턱뼈를 자라게 하고, 뇌 속 신경세포를 자극해 두뇌 발달에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이혁 롯데제과 팀장은 “껌 시장은 올해 10% 이상 성장한 27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