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신음하는 경제, 정치권은 응답하라
한국 경제가 미증유(未曾有)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중국 금융부실이 사상 최대로 증가해 경착륙 가능성을 높이고 있고,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금융부실도 1조유로에 달해 중국과 유럽 양쪽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능가하는 위기가 몰아칠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대책도 마땅치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 수습 과정에서 국가 부채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 재정정책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통화정책에만 의존해 온 나머지 마이너스 금리가 확산되는 이상 현상마저 보이고 있다. 단기 안정화정책이 한계를 보이자 구조개혁과 규제혁파를 주장하지만 이익단체와 기득권의 저항에 부딪혀 있다. 글로벌 경기와 교역이 둔화되는 가운데 글로벌 정책 공조도 사라지고 각국은 자국 통화 절하로 수출을 늘려 위기를 돌파하려는 ‘근린궁핍화식 통화전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수출 비중이 절반인 한국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수출증가율이 작년 -8%에 이어 올 들어서도 1월 -19%, 2월1~10일 -27%로 악화일로다. 개선 전망도 없다. 그 결과 20대 주력 기업 중 13개 기업의 매출이 감소하고 6개 기업은 1조원이 넘는 적자를 내고 있다. 일자리가 생길 리 없다. 정규직 근로자는 1300만명에 불과하고 자영업자 700만명, 비정규직 630만명, 구직단념자를 포함해 실제 청년실업자가 110만명에 이르고 있다.

안팎이 위기 상황인데도 정부, 한국은행, 국회에선 도무지 위기감이 보이지 않는다. 한은은 8개월째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유럽중앙은행(ECB·-0.3%), 스위스(-0.75%) 덴마크(-0.65%), 스웨덴(-0.5%), 일본(-0.1%)이 마이너스 금리를 시행 중이다. ECB, 일본은행은 3월 중 0.2%포인트 정도 더 내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미국도 마이너스 금리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에 따른 부작용도 있지만 자국 통화 가치 절하를 통해 수출을 증대시키는 것 외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는 데 따른 고육지책이다. 중국은 위안화 절하를 위해 바스켓 환율제도도 도입했다. 글로벌 통화전쟁이다.

일본에서 마이너스 금리 도입에도 엔화 강세, 주가 하락이 나타나는 것은 일본은행이 금리를 추가 인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즉 일본 국채 가격은 올라갈 것으로 기대되는 반면 달러화는 약세로 반전되면서 글로벌 투자자들이 일본 국채 매수에 나선 데 따른 것이다. 일본은행이 금리를 시장의 기대 수준만큼 인하하면 혼란은 진정되고 엔화 추가 약세도 전망된다.

이런 가운데 한국만 독야청청하면 통화전쟁의 희생양이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작년부터 14개월 연속 수출증가율 마이너스 지속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관계에 있는 일본 엔화에 대해 원화가 아베노믹스가 시작된 2012년 중반 이후 43% 절상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작년 6월에는 70%까지 절상되기도 했는데 그 여파가 시차를 두고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우려되는 자본 유출에 대해서는 자본 통제가 아니라 내·외국인 차별 없는 거시건전성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달러뿐만 아니라 엔화, 위안화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므로 주요 통화를 고려한 신축적 바스켓 환율제도 도입도 바람직해 보인다. 중국의 바스켓 환율제도 도입이 남의 일이 아니다. 미국 일본과 통화스와프(교환) 추진 등 2선 외화유동성 확보도 중요하다.

3기 경제팀이 출범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위기 극복 비전이 보이지 않고 국회는 정쟁만 거듭해 경제활성화의 골든타임을 허비하고 있다. 이러다 정말 위기를 당해 수백조원의 공적 자금, 수백만 명의 실업 사태가 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위기의식을 가지고 대책에 만전을 기할 때다.

오정근 < 건국대 특임교수·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