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틀렸어요" 료칸 가문 장남의 반란…미국 호텔경영 서비스 접목, 신개념 리조트 왕국으로
1991년 일본의 작은 숙박업체였던 호시노 리조트(당시 호시노 온천)에 4대째 가업 계승자로 호시노 요시하루(星野佳路) 사장이 취임했다. 일본 숙박업계는 당시 난세였다. 거품 경제로 새로운 호텔과 리조트는 우후죽순 생겨났고, 시장 개방으로 외국계 자본도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고급 료칸(일본 전통 숙박시설)에 머물러 있던 호시노 리조트도 위태로웠다. 호시노 일족은 미국 유학과 금융권 경험을 갖춘 그를 신임 사장으로 내세워 돌파구를 마련하려 했다.

24년이 지난 지금 호시노 리조트는 일본을 대표하는 고급 숙박 체인으로 변모했다. 호시노 사장 취임 이전 연평균 20억엔(약 199억원)이었던 매출은 현재 329억엔(약 3280억원)으로 늘었다. 한 곳에서만 운영하던 리조트 시설은 일본 전역 32곳에 달한다. 그의 혁신적인 경영 방식은 호텔 경영학 수업에서 단골처럼 다뤄진다.

아버지 물러나게 하고 사장 취임

호시노는 1960년 일본 나가노현 동부의 가루이자와에서 태어났다. 1914년부터 가루이자와에서 료칸을 운영해온 집안이다.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에게서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얘기를 귀가 아프도록 들었기 때문에 다른 일은 생각하지 못했다. 1983년 게이오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도쿄 시내의 유명 호텔에서 1년 동안 근무했다. 미국 코넬대 호텔경영대학원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1988년 호시노 리조트의 부사장이 됐다.

하지만 사장인 아버지와의 다툼을 견디지 못하고 6개월 만에 일을 그만뒀다. 호시노 당시 부사장은 휴식과 사생활을 중시하는 쪽으로 여행이 변하고 있는 만큼 료칸식 신개념 리조트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100여년 동안 지켜온 전통을 버릴 수 없다고 맞섰다.

2년6개월 동안 씨티은행에서 일하던 그는 호시노 일족의 요청에 1991년 호시노 리조트의 사장으로 복귀했다. 아버지를 물러나게 하고 사장에 올랐지만 이번엔 직원들이 문제였다. 그들의 고객 서비스는 타성에 젖어 개선이 필요했지만 “우리는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자신감을 내세우며 변화를 거부했다.

이때 그가 내세운 것이 미국 유학 시절 배운 ‘고객 만족도 조사’였다. ‘도련님 의견엔 반발해도 객관적인 고객 의견까지 무시하긴 힘들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예상은 적중했다. 프로 의식을 갖고 있던 직원들은 고객 의견엔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후 호시노 리조트는 철저히 고객에 기반을 둔 서비스에 집중해 나갔다.

하루는 호시노 리조트가 운영하는 식당에 전화가 걸려왔다. 이곳에 가끔 들러 소주 두 잔을 반주로 메밀국수를 먹고 가는 노부부였다. 평소에는 소주를 다 마실 무렵 메밀국수가 나왔지만, 전날엔 두 가지가 동시에 나오는 바람에 메밀국수의 면발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는 불만이었다. 항의 전화를 받은 현장 책임자는 다음날 조리 담당자를 데리고 찾아가 사과했다. 조리 담당자는 즉석에서 메밀국수를 요리해 노부부에게 대접했다. 호시노 리조트의 원칙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고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한다”

고객 만족을 위해 호시노 사장은 업계의 전통적인 운영 상식을 완전히 깨버렸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게 리조트의 묘미라는 생각에 객실에 시계와 TV 등을 없앴다.

1박에 하루 두 끼 제공이라는 것조차 고객을 속박할 수 있다고 여겨 숙박과 식사를 분리한 요금 체계를 도입했다. 숙박 고객은 꼭 리조트 내에서 식사하지 않아도 돼 돈을 아낄 수 있고, 숙박하지 않는 고객도 식사만을 위해 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다.

룸서비스도 기존 관행을 깼다. 직원은 1인 다역을 추구한다. 한 명의 직원이 청소부터 접수, 시중까지 책임지게 했다. 투숙 시간과 식사 시간도 고객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대신 가격은 확실히 비싸다. 도쿄 인근의 유명 온천지보다도 두 배 이상을 내야 한다. 그래도 철저한 고객 위주 서비스로 손님은 줄지어 찾아온다. 재방문율이 높다. 호시노 사장은 “일본인들은 해외에 나가 일류 리조트에 머물곤 한다”며 “그런데 왜 국내에선 일류 리조트에 머물지 않을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한다.

고객의 의견을 받아들여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호시노 리조트의 강점이다. 럭셔리 리조트 브랜드인 ‘호시노야’, 일본 전통을 느낄 수 있는 료칸 브랜드인 ‘카이’, 가족에 초점을 맞춘 리조트 브랜드인 ‘리조나레’를 서비스하는 호시노 리조트는 오는 10월 말엔 글램핑 리조트인 ‘호시노야 후지’를 새로 개장한다. 한국과 달리 아직 일본에선 생소한 개념인 글램핑을 앞장서서 도입하는 것이다.

리조나레 브랜드 안에는 조부모와 손자가 함께 여행하는 ‘마고타비(孫旅)’란 프로그램도 있다. 젊었을 때 육아는 외면하고 일만 해왔던 할아버지 세대가 손주를 즐겁게 해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 체류 기간의 경험을 포토북으로 제작해 배송해줘 집에 간 뒤에도 여행의 추억으로 대화에 탄력이 생기도록 배려한다.

지고 못 사는 성격에 자유분방함도

호시노 사장은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다. 어릴 때부터 1등을 하지 않으면 잠을 못 잤다. 리조트 일을 돕고 있는 그의 아내는 “목적 달성에 도움이 된다면 몇 년이 걸리든 반드시 해내는 끈질긴 성격의 소유자”라며 “이게 호시노 리조트의 강점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한 아이스하키는 승부욕이 강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다. 중학교 땐 전국대회에 나가 우승하기도 했고, 대학 시절에도 계속해서 즐겼던 종목이다.

관습을 허무는 자유분방한 성격도 지녔다. 일반 회사가 사장을 중심으로 피라미드 조직으로 운영되는 것과 달리 호시노 리조트는 직원에게 많은 권한을 준다. 팀장은 팀원들의 투표에 의해 직접 선출되고, 회사의 중요한 경영 방침도 직원들에게 모두 공개한 뒤 논의한다. 사장실도 없다. 그날 휴가인 직원의 자리가 그의 자리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