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日 전방위 '독도 도발'을 우려한다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을 맺은 이후 한·일관계를 지탱해온 근간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그간의 한·일관계는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에 기초한 역사인식의 진전,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로서 협력, 그리고 한·일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전략적인 판단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중학교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기술한다든지, 외교청서에서 한국과 자유민주주의 및 기본가치를 공유한다는 내용을 삭제한다든지 하는 것을 보면 한·일관계 65년 체제가 위기를 맞고 있는 게 분명하다.

더욱 문제인 것은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이 지금까지 이뤄온 한·일관계의 근간을 흔들면서도 이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선 이번에 중학교 교과서에 ‘독도 고유영토’ 주장을 기술하면서 식민지 역사에 대한 올바른 기술이 필요하다는 일본 내 목소리는 사라졌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 독도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내셔널리스트의 목소리는 높지만, 정작 종군위안부에 대한 기술이 삭제돼도 이를 바로잡고자 하는 문제제기는 미흡하다.

흔히들 일본인은 ‘전전(戰前)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 모르고’, 한국인은 ‘전후 일본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번 교과서 사건처럼 전전 일본의 잘못을 시정하지 않고 미화하려 한다면 한국인들이 전후 일본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점을 고려하면 탈근대 시대에 맞게 이웃과 사이 좋게 지내면서 상생하는 법을 일본도 자국민에게 가르쳐야 한다.

둘째, 외교청서에서 한국과 기본 가치를 공유한다는 내용을 삭제한 것을 보면 일본이 한·일관계를 개선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일본에서는 가토 산케이신문 지국장에 대한 한국 정부의 기소가 이 내용 삭제의 근거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지금이야말로 한·일관계 개선이 필요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이 내용을 삭제한 것은 국제사회에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비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게다가 미국에 한국은 중국과 가까운 국가가 됐으니 일본만이 미국과 기본적인 가치를 공유한다는 진영논리로 악용될 여지가 충분하다. 과연 일본이 한국과 중국을 동일시하면서 미국의 대변자를 자처하는 게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가져올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일본이 전략적으로 고려한다면 한·일관계의 자산을 증진시켜 양국이 동북아의 공공재로서 역할을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자명하다.

셋째, 한·일관계의 중요성도 점차 약해지고 있다. 일본은 한국을 ‘건너뛰기’하고 한국은 일본을 무시하고 있다. 일본만 보더라도 중·일관계가 잘되면 한·일관계는 자연히 개선될 것이라는 생각이 정계에 팽배해 있다. 일본 내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열의가 높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은 중·일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한·일관계를 우선 개선해야 한다. 중국이 일본 고립화 전략을 쓰기 위해서는 한국이 필요한데, 한국이 일본과 관계를 개선하면 중국으로서도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전략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의 행동에는 지금까지 지탱해온 한·일관계의 근간을 흔들면서 새로운 프레임을 설정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한국도 대일정책을 재점검해야 하며, 발상 전환이 요구된다. 일본에 대한 도덕적 우위의 관점에서 대일정책을 펼치는 것은 자칫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한·일 양국이 역사와 영토분쟁을 둘러싸고 외교전쟁을 벌이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한국 외교의 대전략 하에서 대일정책의 그림을 국제사회에 보여주고 한국의 입장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진창수 <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jincs@sejong.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