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사 건물탐방<48>]-심수봉…두번 이혼에 세번 결혼 과정에도 ‘왕성한 활동’









김진희기자(jhkim@skyedaily.com)



기사입력 2015-02-16 00:07:37































심수봉은 박종규 전 대통령 경호실장의 추천으로 1975년 박정희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나게 됐다. 박 전 대통령은 심수봉이 부르는 ‘눈물 젖은 두만강’과 ‘황성옛터’를 좋아했다고 한다. 1979년 10월 26일 여느 때처럼 만찬회장에 불려갔던 심수봉은 자신의 운명을 바꾸게 된 박정희 시해 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그녀는 사건 이후 혹독한 조사를 받았고, 급기야는 정신병자로 몰려 감금되기도 했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심수봉은 1980년 지인의 소개로 심리학자 한기석을 만나 치료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애정이 생긴 둘은 동거 끝에 결혼해 첫째 아들 한승현을 낳았다. 그러나 심수봉은 결혼 1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이후 심수봉은 사업가 박진섭을 만나 재혼해 1983년 딸 박성희를 얻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결혼 9년 만에 성격 차이로 이혼에 이른다. 심수봉은 1993년 현재의 남편인 김호경을 만나 세 번째 결혼을 했다. 대통령 시해 사건을 겪고, 두 번의 이혼과 세 번의 결혼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보낸 심수봉은 현재 강남구 역삼동 건물 한 채를 소유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가 가수 심수봉과 그녀가 소유한 강남구 빌딩을 유명인사 건물 탐방 마흔 여덟 번째로 소개한다.<편집자 주>








10·26 후 파란만장 그녀…강남 55억 빌딩주


▲ 심수봉은 지난 1989년 강남역 인근 강남구 역삼동의 토지를 매입해 2005년 공사에 착수했다. 그녀의 건물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강남역 언덕길 카페거리와 인접해 있다. 이곳은 현재 그의 아들 한승현이 운영하는 기획사와 심수봉의 자택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카이데일리





세금 미납 압류 처분 받은 시세 55억 심수봉 건물





심수봉(65·본명 심민경)은 강남구 역삼동 강남역 인근에 본인 명의의 건물 한 채를 소유하고 있다. 이 건물은 단독주택과 엔터테인먼트사가 많이 모여 있기로 유명한 강남역과 신논현역 사이 CGV 뒤 ‘언덕길’ 인근에 위치한다.





그는 1989년 2월 약 106평 규모의 토지를 매입해 1990년 연면적 300.48㎡(약91평)인 지하1층~지상2층 건물을 지어 사무실과 자택으로 사용했다. 2005년 이를 허물고 공사에 착수해 2007년 12월 현재의 건물을 완공했다. 같은 땅에다 연면적과 대지면적을 넓혀 신축한 두 번째 건물이었다.





지하2층~지상2층, 옥탑1층으로 이뤄져 있으며 대지면적은 350.2㎡(약 106평)이고, 연면적은 866.26㎡(약 262평)이다. 근린생활시설 및 주거시설로 지정된 이 건물은 현재 아들 한승현이 운영하는 매니지먼트사와 카페 등이 입주해 있다.





건물 최상층은 심수봉 가족의 자택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등기부등본상에 표기된 지하2층은 과거 심수봉이 소규모 공연을 위해 만들었으나, 현재는 예배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승진 원빌딩부동산 팀장은 “현재 시세는 55억 정도로 추산되며, 대지면적 3.3㎡(1평)당 4100만원대다. 땅값 이외의 10억여원 시세는 건물 가치가 반영된다”고 설명했다.




등기부등본 확인 결과, 심수봉 건물의 채권최고액은 23억1840만원으로 설정돼 있다. 통상 대출금액의 120%를 채권최고액으로 설정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심수봉은 담보로 약 19억원 정도 대출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10·26 후 파란만장 그녀…강남 55억 빌딩주


▲ 심수봉은 데뷔 이후 짧은 방송활동을 했다. 데뷔 직후 큰 사건에 휘말리면서 “심수봉의 얼굴이 박 전 대통령을 떠오르게 한다”는 이유로 방송금지 처분을 받았다. 전두환 정권이 끝나가던 1987년이 돼서야 그녀는 안정적으로 방송활동을 할 수 있었다. [사진=뉴시스]




현재 심수봉 소유의 토지와 건물은 2014년 3월부로 서울시 ‘38세금징수과’로부터 압류된 상태다. 2014년 7월에는 역삼세무서 소득세과로부터 건물과 토지 모두 압류처분을 받았다.





그의 건물을 가압류한 ‘38세금징수과’는 지방세 등을 체납하는 고액체납자들을 추적해 각종 증거들을 포착한 뒤 강제징수를 하는 곳이라서 심수봉의 세금 미납이 상당한 액수로 추측될 수 있다는 게 부동산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채무를 변제하고 세금을 완납해도 말소등기를 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덧붙였다.




2014년 7월 15일자로 공연기획업체인 예소이엔티(YESO.ENT)가 심수봉을 상대로 3억3000만원 가량을 청구하며 가압류를 걸어둔 상태다. 에소이엔티는 지난 2007년 심수봉과 매니지먼트 계약을 하고 2010년 재계약을 통해 한동안 심수봉의 콘서트를 전담하는 공연기획업체이나 현재 폐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수봉은 지난 197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그 때 그 사람’으로 데뷔했다. 대학가요제에서 입상하지 못했지만 대중가요에 재즈를 가미한 ‘그 때 그 사람’은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당시 그의 은반이 없어 사지 못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때 그 사람’은 MBC TV 금주의 인기가요와 TBC TV ‘가요 베스트7’의 정상에 등극했다. 심수봉은 TBC와 KBS 신인가수상과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하며 정상의 가수로 떠올랐다.





그러나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사건(10·26사태)에 휘말리며 연예계 인생의 타격을 받았다. 5년 뒤인 1984년 방송금지가 해제돼 재기에 성공했다. 이후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1984)’, ‘미워요’, ‘사랑밖에 난 몰라(1987)’, ‘비나리(1996)’, ‘백 만송이 장미(1997)’ 등 을 히트시키며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 데뷔 35주년 기념 콘서트 ‘심수봉과 떠나는 음악여행’은 서울을 시작으로 부산, 수원 등 7개 지역에서 열렸다. 그녀는 거의 매년 하는 투어 콘서트로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심수봉의 콘서트는 국내 콘서트 판매매수 10위안에 랭크되는 인기 콘서트이다.





심수봉은 우리나라 가수 중 디너쇼에서 안정적으로 관객 확보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가수이기도 하다. 심 씨의 디너쇼 티켓가격의 경우 S석 20만원, R석 23만원, VIP석 25만원으로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흥행이 잘 되고 있었다.





한 업계관계자에 따르면 보통 이틀에 걸쳐 치러지는 디너쇼는 대개 호텔이라는 장소적 한계로 1000석을 넘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인기 디너쇼의 이틀간 공연 매출 규모는 3~4억원 정도다. 이중 약 40~50%는 음식료, 10%는 마케팅 비용으로 쓰인다. 남은 금액으로 가수 출연료와 공연비, 무대 비용을 치른 뒤 나머지를 기획사가 수익을 얻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작사·작곡한 58곡이 한국저작권협회에 등록돼 있으며, 이에 대한 저작권료 또한 상당한 금액으로 추측된다. 현재 심수봉은 아들인 한승현이 운영하는 ‘라이트웨이브 엔터테인먼트’의 매니지먼트를 받고 있었다.





두 번의 이혼 세 번의 결혼…그녀의 남자들 한기석, 박진섭, 김호경





심수봉은 자신의 인생을 바꾼 단 한 번의 사건 이후 지속적으로 정부의 감시를 받았다. 1980년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치료하기 위해 지인을 통해 심리학자 한기석을 만났다. 당시 이들은 1여년의 기간 동안 동거를 했고 대중에게 알려지자 약혼을 했다. 그러나 한기석과의 결혼 생활은 불과 1년이 전부였다. 그 사이 아들 한승현을 낳고 한기석과 이혼하게 된다.





이후 심수봉은 그녀가 노래하던 밤무대에서 사장 박진섭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됐다. 1984년 딸 박성희를 낳고 9년간의 결혼생활에도 불구하고 성격차이로 또 다시 이혼을 하게 됐다. 심수봉은 박진섭에 대해 “한 달에 서너 번 볼 수 있을 정도로 바쁜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10·26 후 파란만장 그녀…강남 55억 빌딩주


▲ 심수봉은 1987년 완벽하게 재기한 후 1989년 토지를 매입하는 등 재테크에 관심을 기울였다. 1994년 지금의 남편 김호경을 만나 평범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슬하에는 두 아들과 한 명의 딸이 있다. [사진 뉴시스]













1993년 심수봉은 지금의 남편 김호경을 만나 결혼했다. 당시 김호경은 MBC라디오 ‘심수봉의 트로트 가요 앨범’의 PD였다. 심수봉은 본인의 히트곡 ‘비나리’가 당시 김PD를 짝사랑했을 때 만든 노래라고 밝힌 적이 있다.





재혼 당시 김호경은 전처 사이에 아들 김규현이 있었는데, 각각 다른 생부를 둔 3형제 사이에서 갈등이 없을 수가 없었다. 심수봉은 급기야 둘째 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나야 했다. 현재 그녀의 3자녀들은 갈등을 극복하고 사업가, 대학생 등으로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다.





‘10·26 궁정동사태’에 휘말린 비운의 여가수





여고를 졸업한 심수봉은 1973년부터 서울 소공동 이태리 레스토랑 ‘라 칸티나’ 등에서 노래 아르바이트를 했다. 어느 날 밴드마스터 엄토미의 부탁으로 박종규 전 대통령 경호실장이 주최한 파티에 피아노 연주자로 참석하게 된다.





이후로 비밀 사교 모임에 불려 다니던 심수봉은 1975년 박정희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나게 됐다. 심수봉은 대통령 전 경호실장인 박종규의 눈에 들어 대통령 만찬에 초대된 것이다. 심수봉의 한 자서전을 보면 ‘눈물 젖은 두만강’, ‘황성옛터’를 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가 있다.





심수봉은 197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부른 ‘그 때 그 사람’이 히트하면서 가수로 데뷔했다. 그러나 데뷔의 기쁨도 잠시였다. 1979년 10월 세 번째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난 만찬자리에서 심수봉은 역사적인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이른바 ‘10·26 궁정동사태’로 불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해 현장이었다. 그날은 충청남도 당진과 아산을 잇는 국내 대규모 방조제의 완공식이 있던 날이다. 기분이 아주 좋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연회를 지시했는데, 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최후의 만찬이 됐다.





당시 현장에는 심수봉을 비롯한 모델 신재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 등이 있었다. 만찬 도중 김재규에 의해 박정희 전 대통령과 경호실장 차지철이 권총에 의해 살해됐다.





당시 합동수사 본부장이었던 전두환은 “범행 동기는 평소 김재규가 건의하는 정책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의 불신을 받아왔고 모든 보고가 차지철 경호실장에 의해 제동을 받아 요직개편에 자신이 해임되는 것을 우려한 끝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사건에 대해서는 심수봉과 신재순의 증언이 엇갈렸다. 1994년 9월 신재순이 발간한 ‘그곳에 그녀가 있었네’ 자서전에서는 합동수사본부의 모든 발표내용과 일치했다. 그러나 심수봉은 1994년 12월 ‘사랑밖에 난 몰라’ 회고록을 통해 당시 합동수사본부가 기록한 것은 김재규 부장의 거짓 증언으로 작성된 ‘엉터리 기록’이라고 주장했으나, 이는 소수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드라마 제4공화국(1995)에서는 그녀의 의견이 반영돼 심 씨는 직접 촬영현장에 방문해 촬영에 관여했다. ‘10·26 궁정동사태’는 이후 제5화공화국(2005)과 영화 ‘그 때 그 사람들(2005)’에서도 재구성되며, 화제를 모았지만 진실은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심수봉은 합동수사 본부장이었던 전두환에 의해 갖가지 혹독한 조사를 받았다. 헛것을 본다는 누명을 쓰게 돼 정신병원에 감금됐고, 한 달이 지나서야 정신병원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심수봉이 TV에 나오면 10·26사건이 떠오르게 한다는 이유로 1980년 방송정지 조치를 당한다. 이후 심 씨는 오랜 칩거생활을 하게 됐다.





1984년 금지 조치가 해제되고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그대와 탱고를’ 등을 발표하며 재기에 성공한다. 그러나 이후로도 지속적인 정치적 탄압을 받고 전두환 정권이 끝날 무렵인 1987년 ‘사랑밖에 난 몰라’로 완전하게 재기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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