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집값과 주식값
코스피지수 2000선이 다시 무너졌다. 한 달 보름 만이다. 기세 좋게 2000선을 뚫고 올라서던 기억을 떠올리면 허탈하기까지 하다. 슈퍼달러와 엔저 후폭풍이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증권가의 한 지인은 “상황이 좋지 않다. 1800선까지 하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여의도 증권가는 다시 풀 죽은 모습이다.

경기의 또 다른 한 축인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따뜻하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및 수도권 아파트값이 최근 11주 연속 올랐다. 지난달 서울지역 아파트 거래량은 5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7·24에 이은 9·1 부동산 대책에 시장이 바로 화답한 결과다. 위례신도시에 들어설 아파트 1순위 청약에 6만여명이 몰려 평균 139 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고 한다.

상식과 다른 시장의 현실

두 시장의 사뭇 다른 분위기가 머릿속에서 명쾌하게 연결되진 않는다. 집값이 오르면 주식값도 오르는 게 정상 아닌가. 지난 4월 금융감독당국까지 나서 ‘서울 아파트 가격이 1% 오르면 코스피지수는 0.63% 오른다’고 밝혔을 정도다. 금융당국이 조금은 ‘오버’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두 시장의 관계는 실증 분석으로 증명됐다.

증권가 사람들이 최근 수년간 입에 달고 다닌 얘기가 있다. 집값 급락은 물론 부동산 거래 침체로 이른바 집에 ‘물린’ 사람들이 워낙 많아 주식시장으로 투자자금이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3년 넘게 이어지는 ‘박스피(박스권 코스피)’의 한 요인이란 지적이다. 뒤집어 보면 집값이 오르면 증시가 살아날 수 있다는 얘기와 같다. 그런데 현실은 ‘아니올시다’라고 대꾸하는 것 같다. 몇 달 안되는 기간을 놓고 두 시장을 평가하는 것이 다소 무리일 수 있다. 부동산 시장의 침체는 가시고 있지만 세계 경제의 불안이 다시 증시를 짓누르는 부분도 있다. 이런 얘기까지 들린다. ‘집값은 삼성전자 실적에 좌우된다’고. 경제의 펀더멘털이 증시와 부동산 시장의 키를 쥐고 있다는 얘기다. 틀리지 않다. 하지만 현 상황을 보면 증시와 부동산 시장의 관계는 다시 애매하게 꼬여 버리고 만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혹시 부동산 시장의 활기가 오래 지속되기 힘든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시장이 그런 의구심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계부실 의구심 풀려야

부동산 시장의 활기가 일부 강남 및 목동 재건축(가능) 단지, 위례신도시 등 ‘미래 블루칩’ 주거지에만 집중되고 있다는 문제 제기가 있다. 1200조원대 가계부채의 상당 부분이 주택대출인데, 일부 지역에서만 ‘군불’이 지펴지면 가계부실이 크게 개선될 리 없다.

해외 사례를 봐도 그렇다. 가계의 부동산 관련 디레버리징(부채감축)이 충분히 진행된 뒤에야 거시경제 전반이 활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미국 정부는 2009~2011년 엄격한 대출 집행과 모기지론 축소 등으로 디레버리징을 본격 진행하는 동시에 ‘제로(0)금리’ 정책과 양적 완화정책으로 측면 지원을 했다. 그 결과 2012년부터 주택가격이 본격 상승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가계부채가 계속 늘고 있다. 불씨를 살려야 하기 때문에 디레버리징을 강력 추진하기 쉽지 않다. 여기에 딜레마가 있는 것 같다. 집값이 오르고 부동산 거래가 늘어 ‘부(富)의 효과’가 경제 전반으로 퍼지기 시작하면 디레버리징을 조심스럽게 진행해 가계 건전성을 회복하는 노력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그래야 증시도 제대로 살아날 것 같다.

장규호 증권부 차장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