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이주열 총재의 '진짜 실력'
김중수 전 한국은행 총재가 재임 후반기 기자와 만나 ‘불통 총재’로 비난받았던 배경 중 하나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 금리정책과 관련해 70%를 소통하고, 30%는 소통하지 않는다는 소신이었다. 그는 시장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지나친 소통으로 금리정책이 투기세력에 부당한 이익을 안겨줄 수 있어 시장을 거스를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후임자인 이주열 총재는 그런 전임자의 불통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비판했다. 지난 3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였다. 2013년 5월 김 전 총재의 한은이 시장 예상과 달리 금리를 인하한 것은 뒷북친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고 “지난해 4월 이전부터 시장에서 금리인하 기대가 컸지만 소통의 문제가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한은이 시장의 신뢰를 충분히 얻지 못해 반성해야 한다고 본다”며 전임자를 향해 날을 세웠다.

세월호 유탄 맞은 150일

그래서인지 지난 4월 이 총재의 취임 일성은 소통 강화였다.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한 통화정책을 펴겠다”고 약속했다. “물가 상승압력이 생기면 선제적인 금리인상도 논의해 볼 수 있다”는 말로 적극적인 소통의 예를 제시했다. 시장도 놀랐다.

하지만 세월호가 그의 일관성, 예측 가능성을 흩트려 놨다. 참사 여파로 소비가 위축되면서 2분기 경제성장률이 0.7%에 그쳤다. 정부의 경제팀 수장은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바뀌었다. 최 부총리는 경기 부양이라는 절박성을 내세우며 공개적으로 금리인하를 압박했다.

금리동결 15개월 만인 지난 8월14일 한은은 연 2.5%에서 연 2.25%로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3개월 전인 5월 “기준금리 방향 자체를 인하로 보기 어렵다”고 시장과 소통했던 이 총재였다. 그는 금리인하가 한은의 독자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 했지만 정부의 요구를 받아준 모양새가 돼 버렸다. 김 전 총재 재임기간이었다면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했다는 비난이 들끓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로 취임 150일째인 이 총재에게 지금까지의 신고식은 약소할 수도 있다. 진정한 소통 실력과 소신을 평가받을 기회는 따로 있지 않나 싶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양적완화를 끝내고 금리를 올릴 때다. 한은의 금리정책 변수가 복잡하게 얽히는 시기다.

기대되는 2라운드 승부

다른 국가들이 미국을 따라 금리인상에 나설 경우 한은도 금리인상 압박을 받을 수 있다. 한국이 저금리를 유지하면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에 유입된 외국인 자금이 높은 금리를 좇아 한국을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내년 2월부터 국내 경기가 회복궤도에 오르지 못하면 더 심각해진다. 이론상 금리인하는 6개월 시차를 두고 실물경제에 본격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시장 일부에서는 한은에 ‘마이웨이(my way)’를 주문하고 있다. 한국이 금리인하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미국의 통화긴축 일정이 나와도 금리인상 기조 전환에 신중해야 한다는 식이다.

국내 경기가 제대로 살아나지 않았는데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 경우 이 총재는 금리인상이냐, 추가 인하냐, 동결이냐 세 갈래 길을 놓고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통화정책 승부처는 경제의 변곡점이다. 시장과의 소통에 실패하고 적시타를 날리지 못하면 이 총재도 자신이 만든 선례대로 후임자가 만든 도마에 오를 수 있다.

김홍열 경제부 차장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