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오바마와 시진핑의 도박
미·중 국교 정상화의 주역인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7~8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란초미라지에서 열린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의 첫 정상회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중국이 진지하게 탐색전을 펼치고 있다. 우리(미국)도 진지해야 한다. 잘 되면 양측 모두의 행운이고, 그렇게 10년이 흐르면 국제관계를 변화시키는 관습이 될 수 있다.”

키신저의 한마디에 이번 회담의 성격과 의미가 농축돼 있다. 수도 워싱턴이 아닌 태평양 연안의 고급 휴양지, 노타이·셔츠 차림의 격식 파괴, 이틀간 4차례에 걸친 8시간 회동, 단둘이 50분간 산책…. 이번 정상회담은 전례없는 ‘파격’의 연속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11월 베이징을 찾았다가 거의 ‘빈손’으로 돌아왔다. 후진타오 당시 주석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할 생각이었지만, 후 주석이 회담기간 내내 준비된 원고만 읽은 탓이었다. 그 뒤 오바마 1기 임기 내내 북한문제, 쌍방간 불공정무역 제소, 위안화 평가절하 등 매끄럽지 못한 관계가 이어졌다. 백악관이 이번 시 주석과의 첫 만남을 ‘친분 쌓기’로 규정하고 격식을 파괴한 배경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오바마가 시 주석과 친분을 맺기 위해 도박을 걸었다”고 분석했다.

시 주석도 도박을 걸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승인’을 거친 발언만 해 온 전임자들의 관례를 던져버리고, 준비된 원고 없이 오바마와 마주앉았다. 이번 회담에서 오바마와의 관계 구축에 실패하면 리더십에 손상을 입고, 부패 척결과 경제 개혁 등도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두 정상은 사이버 해킹, 위안화 평가절하, 불공정 무역, 인권 등에 대해 신경전을 벌였지만 큰 그림에는 합의했다. 중국을 미국과 대등한 ‘글로벌 플레이어’로 인정하고, 미·중 관계를 ‘신형 대국관계’로 재설정하자는 시 주석의 요구를 오바마 대통령이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양국 당국은 회담이 끝나자마자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한국 정부에도 의미 있는 신호탄을 보냈다. 두 나라 정상은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못한다. 핵 개발도 용인할 수 없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박근혜정부의 대중 외교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장진모 워싱턴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