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업체가 위조했던 예전 사례보다 더욱 심각

원자력안전위원회가 28일 발표한 원자로 부품 성적서 위조 사례는 부품의 검증을 맡은 국내의 모 시험기관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예전에 적발된 사례들은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가 위조·변조·날조를 저지른 경우였으나, 이번 경우는 고도의 공신력을 가져야 마땅한 시험·검증 담당 기관이 이런 일을 자행했다는 것이다.

지난해말 불량부품 문제가 터져나온데 이어 시험기관의 성적 위조까지 발생함으로써 원전과 관련한 비리와 부정은 `총체적 비리'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지경에 이른 셈이다.

이 때문에 민간업체의 제출 자료와 원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 1차 검수책임을 진 한국전력기술 등에 아직도 크게 의존하고 있는 원전 부품의 납품·검증 체제를 철저한 안전 위주로 바꿔 나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원안위 발표에 따르면 이번 조작 사건은 해당 부품의 검사와 시험을 담당했던 국내 모 시험기관의 직원에 의해 저질러졌다.

국내 시험기관이 제어케이블 시험 중 일부 사항을 캐나다의 시험기관에 의뢰했는데 그 원본 시험성적표를 받아 본 국내 시험기관의 직원이 데이터를 위조·변조했다는 것이다.

원안위는 4월 말 관련 제보를 받고 조사를 확대하고 문제가 된 제어케이블의 원본 시험성적서를 캐나다로부터 받아 대조한 결과 이런 사실을 밝혀냈다.

다만 해당 직원이 어떤 이유로 이런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규제기관인 원안위에 수사권이 없어 조사가 불가능했다.

이 부분은 앞으로 원자력발전 진흥행정을 담당하는 산업통상자원부의 감사·수사의뢰 등을 거쳐 수사기관이 밝히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원안위 관계자는 "이번 경우는 현행 검증체계 하에서는 제보가 없이는 적발이 불가능했을 사안"이라고 설명하고, 철저한 사전예방 위주로 검증체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력 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 원전의 정비 기간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가동 기간을 최대화해야 한다는 정부와 전력업계의 강박관념이 이런 비리를 부추긴다는 시각도 있다.

정비기간 안에 모든 일을 끝내야 하므로, 부품을 이 기간 내에 조달하는 데 급급하다 보니 한국수력원자력이나 한국전력기술 등이 까다로운 규제와 검증을 자꾸만 피해 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는 향후 2∼3년에 걸쳐 원전 부품의 안전성을 사전예방 차원에서 관리하는 '부품 추적관리시스템'을 도입할 방침이다.

각 부품에 대해 대략 어느 정도 시기가 되면 고장이 나는 경향이 있는지 데이터를 수집하고 그 시점이 오기 전에 선제적으로 부품을 교체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현재와 같이 시간에 쫓겨 부품의 조달과 검증을 끝내야 하는 문제점이 줄어들게 되지만, 이미 가동중인 원전에 대해서는 이를 적용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문제점이 있다.

이에 따라 원안위는 부품 추적관리시스템이 구축될 2∼3년간은 문제가 생길 소지가 다분한 부품이나 시스템을 사람이 일일이 검토하는 방식으로 추가 점검을 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solatid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