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전 새누리당 의원의 남편인 김재호 판사가 박은정 서부지검 검사에게 아내를 비방한 네티즌의 기소를 청탁했다는 의혹 사건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박 검사는 서울지방경찰청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김 판사가 ‘검찰이 기소해주면 다음은 법원이 알아서 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힌 상태다. 당사자인 김 판사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기소청탁은 그 혐의가 더욱 뚜렷해진 상황이다.

이번 의혹 사건은 나 전 의원이 일본 자위대 행사에 참석한 것을 두고 친일파라고 비판한 한 네티즌을 2005년 검찰에 고발한 데에서 시작됐다. 이 사건을 두고 시사인(IN)잡지사 기자가 기소청탁 의혹을 제기했고 나 전 의원은 그를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경찰에 고발했던 것이다. 물론 박 검사 진술의 사실 여부는 김 판사와 박 검사의 소환 및 대질 신문을 통해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결과가 어떻게 확정되건 이번 사건은 그동안 법조 주변에서 은밀하게 나돌던 기소청탁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더욱 심화, 증폭시킬 것은 분명하다.

법조계의 동업자 의식은 중세 길드를 방불할 정도로 강고하다는 비난은 그동안에도 꾸준히 지적돼왔다. 사시 몇 회였는가에 따라 집단 서열이 매겨지고 이 같은 강력한 동료의식이 법적 정의조차 매몰시켜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는 것이다. 일종의 선민의식 속에서 배타적 동질감을 형성하게 된 결과가 바로 전관예우라는 어처구니 없는 범죄로 나타났던 것이고 이번에 드러난 기소청탁 역시 그 한 형태일 것이다.

우리 형제에게 누가 손을 댔다는 말이냐는 식으로 법조인과 갈등 관계에 있는 시민들을 법으로 옭아매고 자의적으로 기소하고 벌을 주겠다는 것이라면 이는 법집행의 외형을 빌렸으되 사실은 조폭을 방불케 하는 무서운 원초적 폭력에 다름 아니게 된다. ‘부러진 화살’ 같은 영화가 히트를 치는 것도 법조에 대한 이 같은 불신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법적 다툼에 한번이라도 휘말렸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가족 중에 판검사 한 명은 있어야겠다는 말을 한다는 상황 아닌가. 우리 사회의 법치는 아직도 이런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