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샌지 체포에 맞서 추종세력들 사이버테러 감행

[Global Issue] 위키리크스 만든 어샌지, 정의의 사자냐…국가기밀 누출한 범죄자냐…
미국 국무부 외교전문(電文) 공개로 전 세계를 뒤흔든 줄리언 어산지 위키리크스 설립자의 일거수 일투족에 전 세계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거대 권력의 부당한 정보독점을 타파하겠다며 지난달 28일 25만여건에 이르는 미국 기밀 외교문서를 폭로한 지 1주일여 만인 지난 7일 그는 영국 런던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이후 어산지는 보석을 신청했고 한 차례 기각을 당한 뒤 결국 보석신청이 받아들여졌다.

어산지는 자신의 체포 배후에 미국이 있고 미국이 자신을 법정에 세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각국의 반응도 제각각이다.

미국 국민의 약 70%는 어산지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러시아와 브라질 등은 어산지를 기소하려는 미국을 비난하고 나섰다.

어산지를 지지하는 해커들은 일제히 위키리크스의 계좌를 폐쇄하거나 위키리크스에 대한 후원을 중단한 기업 그리고 정부기관에 대해 사이버 테러를 감행하는 등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 줄리언 어산지는?

어산지의 개인 사생활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호주 출신인 어산지는 16세인 1987년 멘닥스(Mendax)라는 ID로 해킹을 시작한 뒤 본격적인 해커 생활에 천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18세에 결혼했으나 1991년 해킹 혐의로 호주 경찰에 체포되면서 부인과 결별했다.

어산지는 지난 8월 스웨덴에서 여성 2명을 성폭행했다는 혐의를 받아왔으며 스웨덴 당국은 최근 유럽연합(EU) 소속 국가에서 효력을 갖는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어산지 측은 성추행 혐의에 대해 '근거 없는 일'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마크 스티븐스 어산지 변호인은 "그와 관련된 성추행 혐의는 '안전한 섹스'를 하지 않은 데 따른 사소한 말다툼에서 번진 것일 뿐,범죄와는 상관이 없다"며 "스웨덴 검찰은 미국의 하수인 역할을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그는 "어산지가 이번에 자진 출두한 것은 자신의 혐의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어했기 때문"이라며 "그는 불명예를 씻기 위해 법원의 공정한 심판을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어산지가 긴급체포를 예상하면서도 자진출두를 감행한 것은 갈수록 수사망이 좁혀져온 데다 자금줄이 잇따라 폐쇄되는 등 더 이상 도피 생활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과 스웨덴의 움직임은 어산지를 잡기 위해 정보당국이 만든 '명분'이라는 목소리가 많다. '현대판 로빈후드'란 추앙 분위기도 없지 않다.

'글로벌 정보민주화'를 실현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그는 '올해의 인물'로도 부각했다.

지난 3일 타임에 따르면 그는 2010년의 지구촌 뉴스메이커 선정 온라인 투표에서 1위에 올라섰다.

위키리크스는 이코노미스트로부터 뉴미디어상(2008년), 국제앰네스티로부터 미디어상(2009년)을 수상했으며, 어산지는 올해 타임지가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 후보에도 올라 있다.

일부에선 위키리크스의 '폭로투쟁' 이면에 막강한 비호세력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킨토 루카스 에콰도르 외무차관은 지난달 29일 인터넷 사이트 에콰도린메디아토에 "우리는 어산지에게 거처를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해 망명 수용 입장까지 시사했다.

⊙ 추종 세력들 반란

위키리크스의 대한 국제사회의 견해는 엇갈린다.

기밀을 누출하는 범죄자라는 시각부터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까지 다양하다.

위키리크스는 최근 서방세계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

위키리크스는 지난 2일 복수의 디도스(DDoS) 공격을 받아 웹사이트 서비스가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사태를 겪었다.

스위스 우체국 은행인 포스트파이낸스는 "어산지의 스위스 거주 사실 등 고객 정보가 부정확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계좌 폐쇄를 발표했다.

앞서 온라인 대금결제 서비스인 페이팔도 "불법 활동에 페이팔을 사용할 수 없다"며 6만유로가 입금된 위키리크스 후원 계좌를 차단했다.

이에 위키리크스 지지자들은 대규모 사이버 보복을 감행하고 있다.

보안업체인 시만텍은 최근 위키리크스 지지자들이 어산지의 체포에 항의하며 각국 기업이나 기관에 분산서비스거부(DDoS) 공격을 포함한 사이버 보복 테러를 감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위키리크스에 대한 자금 결제를 차단한 마스터카드 웹사이트가 이미 DDoS 공격을 받은 데 이어 체포영장을 발부한 스웨덴 검찰청,위키리크스와의 관계를 청산한 스위스 은행 웹사이트와 아마존까지 공격 대상에 올랐다.

시만텍은 'Annoymous(익명)'라는 해커 그룹이 이번 공격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LOIC로 알려진 공격수단이 이번 사이버 테러에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LOIC는 특정 서비스를 방해하기 위한 패킷 등을 요청해 DDoS 공격을 유발시킨다.

업계 관계자는 "위키리크스의 기밀정보 폭로 사태에서 보듯이 정보 유출은 비단 정보기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 모든 기업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라며 "기업들은 정보 보호를 위해 올바른 프로세스를 확립하고 보안 솔루션을 시급히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미국과 어산지 누가 이길까?

미 의회전문지 더 힐의 12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하원은 16일 법사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어 법무부를 상대로 어산지에 대한 간첩죄 적용 여부에 관해 따진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위원은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문건을 보도한 언론사의 처벌까지 주장하는 형편이다.

미국 정부의 의중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어산지의 처벌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나섰다.

어산지의 처벌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번 외교문서 폭로로 미국은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임해온 스스로의 위신에 먹칠을 하게 됐다.

또 사이버공간에서는 기존 권력에 충분히 대항할 수 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어산지를 간첩 혐의로 기소하고 위키리크스를 영구 폐쇄시키기 위해 압력을 행사 중이지만 위키리크스는 서버를 스웨덴과 프랑스 등으로 옮기고 폭로를 중단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일부에선 어산지가 더 강력한 폭로를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어산지가 지난 7월 자신의 신변에 문제가 생길 경우에만 공개하도록 암호를 걸어놓은 추가 폭로용 '메일 폭탄'파일을 전 세계에 뿌려놓았기 때문.

영국 선데이타임스에 따르면 이 파일에는 영국 석유회사 BP와 관타나모 수용소 관련 기록 등 민감한 내용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56비트의 복잡한 암호가 걸려 있어 문건을 입수한 미 국무부도 아직까지 암호를 풀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프라인의 시위도 거세다. 어산지의 체포 후 스페인 마드리드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 유럽과 중남미 여러 곳에서 어산지의 체포와 스위스은행 계좌 폐쇄 등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영국 가디언은 이런 현상에 대해 "기존 체제와 인터넷이란 자생적 풀뿌리 문화의 첫 번째 충돌"이라고 논평했고 워싱턴포스트는 "미 정부는 스파이가 아닌 사람을, 또 기밀 준수관련 법 위반 협의로 검찰의 구속영장이 발부되지 않은 사람을 기소할 권리가 없다"고 전했다.

임기훈 한국경제신문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