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구두와 좋은 와인은 언뜻 보기엔 상관없는 것 같지만 많은 부분이 비슷합니다. 장인의 손길을 통해 만들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진정한 가치가 드러나죠."

스테파노 신치니 토즈그룹 회장(52)은 지난 14일 서울 신사동 포도플라자에서 기자와 만나 "명품 구두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사람과 좋은 와인을 경험하고자 하는 사람도 대부분 일치한다"며 "때문에 프랑스 수제화 '벨루티'가 최고급 샴페인인 '동 페리뇽'으로 광을 내는 것이 무모한 행동만은 아니다"고 웃으며 말했다.

신치니 회장은 명품 구두업체의 CEO(최고경영자)이자 와인 '피아니로시'를 생산하는 와이너리의 오너다.

그가 토즈그룹 CEO와 함께 와이너리 오너라는 직함을 갖게 된 이유는 대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8년 이탈리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신치니는 은행원이 되길 원한 부모의 뜻을 따라 1979년 시에나대학 금융학과에 들어갔다. 하지만 따분한 숫자놀이 대신 경영과 마케팅에 빠져들었고,결국 1984년 졸업 후 토즈그룹에 입사했다. 대학 시절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다른 한 가지는 바로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다. 이 와인은 시에나대학이 있던 토스카나 지방의 대표적인 와인 중 하나다.

신치니 회장은 "몬탈치노를 마신 후 반해 버렸다"며 "이때 '몬탈치노에 버금가는 와인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2001년 신치니가 몬탈치노로부터 불과 1㎞ 떨어진 곳에 피아니로시 와이너리를 설립한 것은 20년 전의 결심과 무관치 않다.

신치니 회장은 매년 2~3차례씩 한국을 찾는 '지한파'다. 특히 김치,갈비,비빔밥을 좋아하는 한국요리 마니아로,이탈리아에서도 일부러 한식당을 찾아다닐 정도다. 한국 술에 대해 신치니 회장은 "소주,막걸리도 와인이나 일본 사케처럼 지방색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저변 확대를 위해선 대기업의 진출도 필요하지만 대량 생산체계로 인해 각 지방 막걸리 고유의 색채를 훼손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피아니로시'와 '피아니로시 솔루스'는 국내 판매가격이 각각 17만원,7만원으로 제법 비싼 편이다. 하지만 라벨 디자인은 빨간 점 하나가 전부다.

신치니 회장은 "와인의 빨간 점은 와인명처럼 '붉은 흙'을 의미함과 동시에 와인을 향한 열정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동양문화에 관심이 많은 그답게 '화룡점정'(eye's of dragon)이라는 설명도 붙였다. "아시아 고객들은 물론 이탈리아인 중에도 와인을 어려워하는 이들이 많아 기억하기 쉽도록 빨간 점을 찍었다"며 "품격있고 강한 개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오래된 친구처럼 친숙하도록 심플하게 만드는 것은 '토즈'와 '피아니로시'의 공통적인 지향점이기도 하죠."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