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의 홍수 시대입니다. 적어도 2009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만큼은 그랬습니다. 신차 82대 중 무려 26대가 전기차일 정도였죠.

친환경차의 정수인 전기차가 과거보다 훨씬 빨리 우리 앞으로 다가온 것은 사실입니다. 르노의 ZE,푸조의 아이온,스마트의 ed,로터스의 로터스 시티카 등 소형 전기차들이 이번 모터쇼를 화려하게 장식한 주인공들입니다. 닛산 미쓰비시 같은 곳은 이미 시제품까지 내놨지요.

그렇다면 전기차 시대가 진짜 오는 걸까요?

이상하게도 많은 전문가들이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습니다. 이번 모터쇼에서 전기차를 선보인 완성차 업체들의 개발담당 임원들이 특히 그랬지요.

볼프강 하츠 아우디 및 폭스바겐 파워트레인 개발 총괄책임자는 저와 만난 자리에서 "10년 내 전기차 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더군요.

"아무리 좋은 기술을 내놔도 소비자에게 그 비용을 전가하고,또 접근성이 제한된다면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된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폭스바겐과 아우디는 이번 모터쇼에서 소형 전기차인 'E-업'과 'e-트론 컨셉트카' 등을 내놨지요.



폭스바겐의 크리스티안 크링글러 브랜드영업·마케팅·AS 총괄 책임자도 비슷한 의견을 밝혔습니다.

"하이브리드카가 나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시장 점유율이 미미하다. 인프라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전기차에 대한 관심은 너무 이른 측면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번에 전기차인 i10 일렉트릭을 선보인 현대차는 어떤 입장일까요?

현대차 연구개발총괄본부의 이기상 하이브리드설계팀장(상무)를 만났을 때 똑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상무는 수 년 안에 전기차를 상용화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했습니다. 지금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컨셉트카를 쏟아내는 것은 다분히 '마케팅' 측면이 강하다더군요. 당분간 전기차가 친환경차의 주류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전세계 하이브리드카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는 도요타는 전기차 성격이 강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 생산 준비에 착수했지만,전기차의 경우 양산계획이 전혀 없다고 합니다.

전기차 시장상황을 예의주시하는 소수의 담당자만 있을 뿐이라고 하는군요. (사실 하이브리드카 기술만 확보하고 있으면, 전기차를 개발해서 양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합니다.)

어떤 전문가는 요즘의 전기차 열풍이 1990년대 초 '태양열 자동차'와 비슷하다고 했습니다. 당시 태양만 있으면 달릴 수 있는 태양열 자동차가 내연엔진 차량을 급속 대체할 것으로 봤지만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요.

전기차 전망이 이처럼 부정적인 가장 큰 원인은 경제성입니다. 전기차용 배터리값이 워낙 비싸다보니 경쟁력을 얻기 힘들다는 겁니다. 현재 '전기차용' 배터리 가격은 일반 중소형차와 맞먹습니다.



또 다른 원인은 배터리의 효율성에 있습니다. 가정용 전기코드로 한 번 충전해서 멀리 갈 수 있어야 하는데,지금 기술로는 최장 160㎞밖에 달릴 수 없습니다. 경유차가 최대 1000㎞ 이상 주행할 수 있다는 점과 차이가 많은 겁니다.

곳곳에 급속 충전기를 설치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지만,차가 많이 팔리지 않는 상황에서 충전기를 대량 보급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전기차는 당분간 대도시 위주로 제한적으로만 판매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친환경차가 당분간 하이브리드카와 클린디젤차로 양분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이브리드카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과 휘발유차보다 50% 이상 높은 연료 효율성이 무기입니다.

유럽업체들이 중심인 클린디젤차의 경우 별도의 추가장비 없이 연비를 개선할 수 있는 게 최대 매력이죠. 가격 경쟁력 면에서 가장 앞섭니다.

일부 업체들은 조만간 지금보다 연비를 최대 30% 개선한 클린디젤차를 선보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10년 후 모습, 정말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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