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의 범선 코리아나호 선상에 로드 스튜어트의 노래 '세일링'(Sailing)이 울려 퍼진다. 전남 여수에서 범선에 올라 일본 대마도로 향하는 한국레포츠연맹(총재 최용기) 시 · 도지부 간부들의 표정에도 해양실습에 나서는 긴장과 기대가 서려 있다.

여수에서 대마도까지는 200㎞쯤 되는 가깝고도 먼 항로.길이 41m에 마스트가 4개인 범선 코리아나호이지만 풍랑이 거셀 경우 6~7노트의 속도밖에 안 나기 때문에 최소 12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 정채호 선장(61)은 출항 미팅에서 승객들에게 '관광객이 아닌 같은 배에 탄 승무원으로서 행동할 것'을 주문한다. 서로 힘을 모아 줄을 당겨 돛을 올리면서 협동심을 기르고 범선 항해하는 법을 배우며 도전정신을 익히자는 것.코리아나호의 선실에 들어서면 겉모습과 다른 것에 일단 놀란다. 선실 내부는 정 선장이 교육용으로 뜯어 고친 탓에 비좁다. 도전정신 인내와 끈기를 기르는 도량인 셈이다.

이제 출항이다. 동력으로 일단 연안을 벗어난 뒤에야 돛을 펴기 시작한다. 여럿이 모여 들어 돛줄을 당긴다. 돛을 올리다 중간에 걸리면 조금 내렸다 다시 올려야 하기 때문에 돛 올리는 데 걸리는 시간도 만만찮다. 갑판 위에 뷔페식(?)으로 마련된 저녁식사를 마치면 항해실습 시간이다. 키(배의 조종간) 앞으로 모여 정 선장으로부터 키를 잡고 항로를 따라 범선 조종하는 법을 배운다. 평소 요트에 관심이 있어 모두 잠든 새벽에 한 시간 넘게 키를 잡고 항해를 책임진 안근일 한국레포츠연맹 경북회장은 "캄캄한 바다에서 마주 보며 다가오는 배를 만나면 부딪칠까봐 마음을 졸였지만 비바람을 맞아가며 키를 잡고 바다에 맞서는 재미를 느꼈다"고 전한다.

날이 밝자 대마도 이즈하라항이 눈에 들어온다. 통관 수속을 마치자 떨어지는 첫 선물.목욕이다. 사실 코리아나호에는 좁은 화장실에 달린 샤워기 말고는 샤워시설이 따로 없다. 목욕탕 이용객의 80% 정도가 한국인인 것을 보면 한국 여행객이 대마도 경제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하는지 알 수 있다. 관광버스를 타고 돌아보는 만제키다리,와타즈미신사,에보시다케전망대 등 여러 관광지도 왠지 낯설지 않다.

사실 대아고속해운이 주 4~6회 부산에서 대마도 이즈하라항까지 운항하는 정기노선을 이용하면 2시간30분밖에 안 걸린다. 단지 대마도에 가려는 목적으로 범선을 이용하는 것은 한마디로 비효율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바람과 파도에 맞서며 범선을 타는 이유는 뭘까. 무언가 잊어버린 자연에의 그리움,'빨리 빨리'에 맞서는 '슬로 슬로'의 묘미가 범선 여행에 있는 게 아닐까. 바삐 움직이느라 지친 심신을 범선에 싣고 파도가 치는 대로 몸을 맡기다 보면 언젠지 모르게 치밀어 오르던 뱃멀미도 가라앉고,우리를 시험하는 거친 바다로부터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겸손하게 돌아볼 수 있는 건 아닐까.

짧은 대마도 관광을 마치고 여수로 돌아오는 뱃길은 더 힘들다. 3m가 넘는 파도와 바람이 범선을 할퀼 때마다 마스트에 매단 돛은 비명을 지르고 선실의 물건들은 한쪽으로 쏠린다. 그 안에서 승객들은 눈을 감고 잠을 청하거나 멀미를 견디려 갑판과 선실을 오르내린다. 이윽고 해가 뜨고 범선이 다도해로 들어서면서 바다는 잠잠해진다. 18시간 만에 뭍에 오른 한국레포츠연맹 간부들의 지친 얼굴에 어느덧 고난을 함께 치른 동료애가 어려 있다

여수 코리아나호=글 · 사진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