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몸을 맡기자 두 발이 미끄러져

시간을 벗어나기 시작했어요

내 안에서 풀려나온 실은 술술술술

문지방을 넘어 밖으로 흘러갔지요

춤추는 발이

빵집을 지나 세탁소를 지나 공원을 지나

동사무소를 지나 당신의 식탁과 침대를

지나 무덤을 지나 풀밭을 지나

돌아오지 않아요 어쩌면 좋아요

세상은 나에게 계속 춤추라고 외쳤죠

꼬리 잘린 고양이처럼 다리를 잘린다 해도

음악에 온전히 몸을 맡길 수 있다니,

그것도 나에게 꼭 맞는 분홍신을 신고

말이에요…

이 도시가 나를 잡으려고 도끼를 들고

달려와도 이제 춤을 멈출 수가 없어요

오래 전 내 발에 신겨진, 그러나 잠들어 있던

분홍신 때문에

그 잠이 너무도 길었기 때문에


-나희덕 '분홍신을 신고' 부분


춤이 마술을 부린다. 빙글빙글 돌 때마다 빵집,세탁소,공원,동사무소,식탁,침대가 하나하나씩 머리에서 지워진다. 모두 익숙한 일상의 소품들이었다. 그러나 다시 챙길 필요가 없다.

나에게 꼭 맞는 분홍신을 신은 뒤의 변화다. 가벼워진 걸음걸음에 신바람이 절로 난다. 그렇게 좋은 분홍신을 여지껏 모르고 살았다니.나를 잡으려고 이 도시가 도끼를 들고 달려와도 이제 춤을 멈출 수 없다.

고무신을 벗지도 않을 것이다. 이런 자신감은 몸안의 실타래가 술술 풀린 덕분에 생겼다. 비워야 채울 수 있고, 풀어야 새로 똬리를 틀 수 있다. 오늘은 "셸위 댄스(shall we dance)"를 노래 부르면서 하루를 출발하시면 어떨지.술술 풀릴테니까.

남궁 덕 문화부장 nkd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