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실물경기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시장안전판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산은은 올해 시중에 공급키로 한 자금 규모를 지난해 30조1427억원과 비교,6.2% 늘어난 32조원으로 책정했다. 이 중 기업들의 설비투자 지원과 운영자금 지원에 각 11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설비투자는 경기회복을 촉진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가,운영자금 지원은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의 원활한 경영활동을 도와 실직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다. 중소 · 벤처기업 육성에도 별도로 9조5000억원을 공급할 예정이다. 금리와 대출한도를 우대하는 중소기업 특별자금에 6조원을 배정했고,혁신형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3조5000억원을 책정했다.

이는 과감하고 신속한 지원으로 경제위기를 조기에 극복할 수 있도록 길을 낸다는 민유성 행장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 민 행장은 "중기와 벤처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강화해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이라며 "신규 지원자금의 60%를 상반기에 배정해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중기의 든든한 '우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들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가계와 중소기업 대출 등 위험도 높은 대출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움츠리고 있는 것과는 상반된 행보다.

산은은 두산그룹과 STX조선 등 9개사와 상생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지난달까지 2552억원을 지원하는 등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협력 프로그램 정착에도 힘을 쏟고 있다. 신속지원프로그램(패스트 트랙)에 따라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 63곳에 4615억원을 공급했고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중기 대출금 5조8000억원에 대해 전액 상환을 유예해주고 있다.


미래 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산은은 프로젝트 파이낸싱(PF)과 벤처투자 등의 방식으로 1조원을 녹색산업에 투자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신성장동력 분야의 기술개발과 산업에 직접 투자하는 별도의 팀을 조직했고,탄소배출권 거래에도 적극 참여키로 했다.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은행자본확충펀드와 채권안정펀드에도 수조원을 지원한 데 이어 경영위기에 처한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서도 1조원 규모의 턴어라운드 펀드를 조성,운영할 계획이다.

산은은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서 민영화를 위한 산은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9월에는 산은 지주회사와 한국정책금융공사(KPBC)가 각각 분리 출범하면서 투톱체제를 갖추게 된다. KPBC는 산은이 보유한 한국전력,도로공사,토지공사 등 공기업과 구조조정 기업의 지분을 현물로 넘겨받아 산은의 정책금융 기능을 맡게 된다. KPBC는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의 하락 부담 없이 중소기업 대출,사회간접자본(SOC) 건설 지원,구조조정 펀드 출자 등에 수십조원의 자금 투입이 가능하다. 가계와 기업 등 민간 경제주체가 소비,투자를 망설일 때 적극적인 투자와 고용 창출을 통해 경기순환의 진폭을 최소화하는 완충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경영혁신을 통한 이미지 개선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산은은 올 들어 부점장급 직원들이 자율결의를 통해 기본급의 5%를 반납하기로 했고,이를 소외계층 지원과 일자리 나누기를 위한 재원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앞서 임원은 기본급을 50% 수준으로 삭감했고,대졸초임도 20% 깎기도 했다.

저소득계층과 금융 소외계층을 위한 사랑 실천에도 앞장서고 있다. 은행 내 공익재단인 산은사랑나눔재단은 2005년부터 사회연대은행에 모두 11억원을 기부,자활의지와 능력을 가진 저소득계층 52명의 창업을 지원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