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경제위기로 더 깊이 실감하게 됐지만 우리 경제는 1980년대 말 이후 성장 추세선이 내리막길이었다. 고비용 구조 때문에 가격경쟁력을 잃었고,지식 습득과 기술 축적 중심의 '모방 경제'도 한계를 드러냈다. 이런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많은 회사들이 21세기 들면서 혁신 · 창조 역량에 목말라했다. 우리 기업들이 혁신 · 창조 방법론인 '블루오션 전략'에 열광한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최악의 경기침체로 모든 회사들이 살아남기에 바쁘지만 지금이야말로 전 직원들의 혁신 · 창조 역량을 어떻게 하면 더 높일 수 있을까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땀 흘려 생산성을 높이는 20세기 방식에는 이별을 고해야 한다.

직원들의 상상력을 길러주고 회사를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조직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많다. 우선 직원들에게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혁신은 주변부끼리 부딪히는 데서 일어나고 창의성은 이질적인 접촉에서 높아지기 때문이다. 구글이 직원들에게 근무시간의 20%는 직무와 전혀 상관없는 자유시간으로 쓰게 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수시로 사내 벤처를 공모해 신규 사업 기회를 모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런 제도를 마련한다고 회사가 갑자기 창의적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장치를 늘려가는 과정에서 엉뚱한 아이디어를 장려하는 기업문화가 생기고 그 가운데서 놀라운 히트 상품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사실 혁신적인 조직을 만드는 데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경영자다. 대부분의 경영자는 과거의 성공 경험이 많기 때문에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게 돼있다. 위험해 보이는 아이디어나 논리가 부족한 상상력을 단호히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벤처캐피털에서 거액의 투자를 유치한 경험이 있는 한 회사 기획부장의 말."가장 힘든 게 고참 경영진을 설득하는 거예요. 설득에 실패하면 다시는 그 얘길 못 꺼낸다는 게 더 큰 문제지요. "

경영자가 잘못 결단을 내리면 직원들이 며칠을 새워가며 고민한 프로젝트가 한번에 날라간다. 경영자가 자라나는 창의력을 잡아먹는 '아이디어 뱀파이어' 노릇을 해서야 되겠는가. 인터넷 덕분에 누구라도 세계적인 히트 상품을 만들 수 있게 됐지만 자라나는 아이디어들이 '웃기는 일' '위험한 발상'으로 매도돼 뿌리부터 뽑히고 만다. 그렇게 구박받고 뛰쳐나온 사람들이 벤처 정신으로 만든 것들이 최근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인터넷 서비스 기업들이다.

한경아카데미 원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