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쾌했다. 후련했다. 답답하던 가슴이 뻥 뚫렸다. 잔뜩 찌푸린 이치로는 물론 멍한 표정의 일본 관객들을 향해 "용용 죽겠지" 소리치고 싶었다.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아시아 라운드 1 · 2위 결정전인 2차 한 · 일전의 승리는 실로 기쁘고 고맙고 감격스러웠다.

이틀 전에 치러진 1차전은 참담함 그 자체였다. 설마 설마 했는데 2 대 14 콜드게임 패라니.어이없고 부끄럽고 분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싶었던 것도 잠시,고개를 푹 수그린 김인식 감독과 선수들의 처진 어깨를 보는 순간 가슴이 미어졌다.

아시아 야구 종주국으로서 베이징올림픽에서 당한 패배가 뼈아프고 치욕스러웠을까. 일본은 이번 경기를 위해 벼르고 벼른 흔적이 역력했다. 국내 최고는 물론 미국에서 활약하는 선수까지 몽땅 불러모아 막강 전력을 구축했다. 그에 비해 우리는 마지막까지 선수진이 바뀌는 등 혼선을 거듭했다.

안그래도 야구 인프라를 비롯한 객관적 수치 면에서 보면 한국은 일본의 적수가 못된다. 일본엔 6개나 있는 돔구장이 한국엔 하나도 없다. 한국엔 100개가 안되는 고교 야구팀이 일본엔 4000개가 넘는다. 뿐인가. 이치로 한 사람 몸값이 우리 선수 전체의 몸값보다 많다는 마당이다.

겉으로 드러난 조건으로 보면 이기기 힘든 게임이다. 그런데 이겼다. 천금같은 기회를 놓치고 위기도 맞았지만 끝내 한 점도 내주지 않음으로써 2차전에서도 완승하겠다 큰소리치던 하라 감독과 선수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봉중근부터 임창용까지 잘 던지고 잘 막았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궁극적인 승리는 스펙보다 해보겠다 이기겠다는 투지와 깡,최후의 순간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는 치열함과 침착함,해낼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흐트러지지 않는 집중력을 지닌 쪽에 돌아간다. 일본팀의 경우 어쩌면 1차전 대승으로 까짓것 하는 자만심에 부풀어 있었을지 모른다.

반면 우리팀은 이를 악물었으리라.무슨 일이 있어도 2차전에선 반드시 설욕하겠다고 다짐하며 정신을 가다듬었을 것이다. 성공은 이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굳은 집념으로 끈질기게 밀어붙일 때 다가선다. 대흉은 대길과 통한다는 것도 같은 이치다. 처절함에서 비롯되는 절치부심이야말로 역전과 대박의 밑거름인 까닭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