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로 인해 시중자금이 안전자산을 찾아 움직이면서 채권 투자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개인투자자나 법인들의 여유자금이 몰리며 채권 소매판매액이 사상 최대치로 치솟고 있어 채권 투자 대중화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4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채권 판매에 주력하고 있는 일부 증권사의 경우 소매(개인+법인)판매액이 지난해보다 2배 이상 급증해 월 5000억원을 넘나들고 있다. 개인투자자는 물론 저축은행 등 일부 법인들의 자금도 안정적인 고금리 상품을 좇아 채권시장으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2003년부터 시작돼 7년째를 맞은 일반인의 채권 투자는 그동안 고액 자산가 중심으로 이뤄졌지만 저금리와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지난해 말부터 1000만원 안팎의 소액 투자자들이 중심 세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통적으로 채권영업이 강한 동양종금증권의 지난 1월 소매판매액은 6300억원으로 월 기준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올 들어선 1조2000억원을 넘어섰다. 월 평균 3000억원 선이던 판매액이 2배 넘게 불어난 것이다. 삼성증권의 채권판매액도 비슷한 추세다. 작년 상반기 월평균 2500억원에 머물렀던 채권판매액은 올 1~2월엔 5000억원 수준으로 2배가량 늘었다.

이처럼 채권 투자가 급증하는 것은 증권사들이 은행권의 정기예금 등에 맞서 전략적으로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데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삼성증권은 채권 투자를 어려워하던 개인들의 심리적인 장벽이 최근 크게 낮아졌다고 보고 투자자들이 원할 때 채권을 사고팔 수 있도록 '마켓메이킹'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채권 만기 전이라도 손쉽게 매매할 수 있도록 해 환금성을 보장해주겠다는 취지다. 삼성증권은 "환금성이 보장된다면 정기예금보다 못할 게 없다"며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달라진 금융시장 환경하에서 정기예금 가입자들을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수신이 급증한 제2금융권의 법인들도 자금운용처로 고금리 채권을 선호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은행권보다 높은 금리를 주려면 연 6~7%대 고금리 채권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저금리와 경제불안으로 투자처를 못 찾은 시중자금이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고수익이 가능한 채권으로 몰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아차 대한항공 SK네트웍스 현대산업개발 등 대기업 계열이면서 신용등급 'A0' 이상으로 안정적인 기업들이 연 6~8%의 고금리 채권을 발행하자 매수세가 확산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채권 투자 대중화가 성큼 다가왔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범식 삼성증권 파트장은 "소매판매 중 개인고객 비중이 작년에는 30% 정도였지만 올 들어선 40% 이상으로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도 1980년대에 금융위기가 불거져 10년 불황이 시작되면서 채권 투자가 대중화됐다"며 "최근 한국의 채권 소매판매 증가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분석했다.

대중화의 조짐은 투자금액의 하향에서도 엿볼 수 있다. 기승찬 동양종금증권 팀장은 "고액 자산가들의 투자도 늘고 있지만 그보다는 1000만~2000만원의 상대적인 소액으로 채권을 사는 사람이 급증하는 추세"라며 "채권도 펀드나 주식처럼 대중적인 투자자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