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중소기업 최고경영자 과정을 함께한 분들과 한라산 눈길을 등반하면서 참 막막했던 기억이 난다. 한치 앞도 안보이는 눈길,점점 심해지는 눈보라.다리에 힘은 풀리고,차가운 눈이 볼을 때릴 때 잠시 눈길에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산 정상은 멀기만 하고,돌아가려니 이미 너무 멀리 와 있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쉴 수도 없는 상황.헐떡이는 숨을 한번 고른 후 앞사람 뒷사람의 어깨를 번갈아 두드리며 다시 정상을 향해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던 기억이 새롭다. 세계적으로 경제위기 한파가 몰아쳤던 지난 겨울.예년에 비해 유독 추웠던 날씨와 더불어 세계적인 경제한파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 오고 있는지 곱씹으면서 말이다.

그리 오래 살아온 인생은 아니지만,그 가운데 20여년을 기업을 키우며 보냈다. 돌이켜 보면 편하고 좋기만 한 때가 어느 때였던가 싶다. 위기를 넘기니 새로운 기회가 오고,기회를 잡았나 싶었더니 다시 위기가 반복되는 세월이었다. 커팅글래스 개발로 시계 매출이 한창 늘어날 즈음 홍콩의 모조품 때문에 주문이 끊겼을 때,생산제품의 80%를 수출하던 중동시장이 이라크전 발발로 치명타를 입었을 때,'이게 끝은 아니다,분명히 새로운 길이 있다'고 마음 다잡으며 위기를 넘겼던 기억이 난다.

대기업,중소기업할 것 없이 모두들 힘들다고 한다. 이런 어려움은 처음 겪는다는 사람들도 많다. 이제 끝장이란 분들도 있다. 그러나 "정말,너무 힘들다"고 말하는 중소기업인들을 격려하며 "이게 끝은 아니다,아직 가야 할 길이 있고 지금까지 지나온 길이 있으니 주저앉지 말고 희망의 끈을 같이 이어가 보자"고 했다.

나는 고난이 찾아왔을 때마다 '참 많이 걸어 왔구나'라며 분투했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용기를 내왔다. 찬찬히 살펴보면 앞을 향해 묵묵히 걸음을 내딛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이고,앞으로 갈 길에 대해 희망을 품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겨울을 견디다 보면 봄은 반드시 온다. 아침에 출근해 가만히 사무실 창문을 열어 보니 길 건너 여의도 공원이 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햇살이 잘 드는 곳에선 이미 봄꽃이 꽃망울을 틔우고 있다. 우리 경제도,우리 삶도 햇살 아래 봄꽃처럼 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노(No)를 거꾸로 쓰면 전진을 의미하는 온(On)이 되고,'내 힘들다'를 거꾸로 하면 '다들 힘내'가 된다고 한다. 이제 돌아가지도,주저앉지도 말자. 숨 한번 고르고 옆 사람 어깨 툭툭 쳐주며 다시 한걸음 내디뎌보자.

할 수 있다는 긍정의 믿음을 갖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다시 한번 입술을 굳게 깨물고 나가보자고 스스로 다짐해 본다. 얼굴을 스치는 봄기운을 느끼며 희망의 메시지,활기 넘치는 사회가 하루 빨리 찾아오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