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테크노파워의 신화는 이어진다" 2003년은 중국의 새로운 테크노크라트(기술전문 관료)가 13억명의 중국 대륙을 본격적으로 이끌어 가는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장쩌민(상하이교통대 전기공학과)국가주석-리펑(옌안 자연과학원)전인대 상무위원장-주룽지(칭화대 전기공학과)총리"로 대표되는 1기 테크노크라트가 일선에서 물러나고 "후진타오(칭화대 수리공정학부)당총서기-원자바오(베이징지질대학)부총리-우방궈(칭화대 무선전자학과) 부총리"를 축으로 하는 2기 테크노크라트가 중국 지도부의 최고위직에 전면등장하기 때문이다. 후진타오 총서기는 올 3월에 열리는 제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장쩌민 국가주석의 뒤를 잇고 주룽지 총리의 후임에 원자바오 부총리가 취임할 예정이다. 또 리펑 전인대 상무위원장의 후임에는 우방궈(吳邦國) 부총리가 선출된다. 중국 권력의 핵심요직을 이공계 출신의 테크노크라트가 고스란히 물려받게 되는 셈이다. 과학기술 관료로 나라를 이끌게 하는 중국 공산당 특유의 정치현상을 살펴볼수 있는 대목이다. 이들 대부분은 대학 졸업후 전공을 살려 기업이나 대학에서 현장 학습을 철저히 쌓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후진타오 총서기는 칭화대에서 기피학과였던 수리전기학부에 지원했고 68년부터 1년간 오지인 간쑤성으로 내려가 수리전기부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74년까지 간쑤성 수리전기부 기술원을 지냈다. 그는 간쑤성 노동현장에서 정치인생의 길을 열어준 후견인인 원로정치인 송핑을 만나게 된다. 후진타오는 송핑의 도움을 받아 중앙 정치무대에 첫 발을 내딛고 지난 92년 최연소로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 올랐다. 신진 정치세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덩샤오핑의 눈에 들어 그는 "제4세대 지도자"로 일찌감치 낙점됐다. 후진타오 총서기와 콤비를 이루게 될 원자바오 부총리는 정치풍파를 헤쳐나온 자수성가형 기술관료로 주룽지 총리의 측근이다. 지질전문가로 간쑤성에서 14년째 근무하던 당시 쑨다광 지질부장의 눈에 들어 지질부 부부장으로 발탁되면서부터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성실성은 88,89년 양쯔강 대홍수때 억수같은 비를 뚫고 현장을 누비는 모습으로 중국인들에게 각인돼 있다. 지난 98년 주룽지 총리로부터 경제 행정에 대한 "총리 수업"을 받아왔다. 주총리의 금융공작위 비서를 역임하면서금융개혁을 주도해 왔다. 우방궈 부총리는 "장쩌민-주룽지"로 이어지는 상하이방의 핵심인물이다. 상하이전자관의 제3공장 직공으로 10여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다. 그를 만난 외국계 기업 경영자들은 "조용하고 침착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평한다. 권력의 핵심에 있으면서도 서민적 풍모를 잃지 않았다는 평판을 얻고 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