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의 자금운용에 비상이 걸렸다. 시중 부동자금이 은행권으로 대거 유입되고 있으나 마땅한 운용처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12일 금융계에 따르면 은행 수신은 지난달에만 7조7천2백91억원이나 늘어났다. 올 상반기 증가액인 6조7천7백억원을 웃도는 액수다. 이달 들어서도 주식시장이 침체돼 있는데다 부동산 투자열기도 주춤함에 따라 시중자금의 은행 유입세는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은행들은 이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자금을 운용할 곳을 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은행 총대출의 40∼50%를 차지하는 가계대출은 금감원의 잇따른 억제책으로 제동이 걸렸다. 중소기업 대출도 은행간 경쟁으로 포화상태에 달한데다 벤처기업 불황까지 겹쳐 안심하고 빌려줄 만한 곳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은행들은 또 SOHO(소규모 개인사업) 등 신규대출처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가계대출 시장을 대신하기엔 역부족이다. 대출 외에 은행들이 여유자금을 운용하는 채권 등 유가증권 시장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채권투자의 경우 저금리로 역마진이 우려되기 때문에 운용비중을 늘리기 어렵다"며 "연말을 앞두고 BIS 비율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위험 가중치가 높은 투신사 수익증권에 대한 투자비중은 오히려 줄여할 처지"라고 지적했다. 더욱이 예금보험공사가 예보채 상환에 적극 나섬에 따라 채권시장에선 우량 채권물량이 줄어들고 있어 은행의 자금운용 입지를 더욱 좁히고 있다. 이에 일부 은행은 금리를 보수적으로 운용하는 등 수신조절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예금을 받는다고 해도 돈을 굴려 수익을 낼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라며 "대출 등 자산운용 계획에 맞춰 매달 예금규모를 조절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일시적인 여유자금을 은행의 수시입출식시장성예금(MMDA) 등 단기 고수익 상품에 맡겨 차익을 거두려는 거액 예금은 아예 거부하는 은행들도 나타나고 있다. 금융연구원 이지언 연구위원은 "은행들의 자금운용 수단은 대출과 채권 밖에 없다"며 "새로운 대출처를 발굴하지 못하면 더이상 못견디고 수신금리를 내리는 은행이 속출할 것"으로 내다봤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