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CEO''다. 이 용어는 원래 기업의 최고경영자를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경영과 관계가 먼 듯한 대학에서 "CEO 같은 총장이 등장해야 한다"고 말하는가 하면,대통령선거에 출마하는 정치인들까지 "CEO 같은 대통령이 등장할 시점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CEO,즉 조직의 최고집행책임자(Chief Executive Officer)를 의미하는 이 말은 아주 오래 전에 등장한 것도 아니고,아직 확실한 정의가 내려진 것도 아니다. CEO라는 단어가 나오기 전 이 말과 같은 뜻을 지닌 용어는 최고경영자(Top Manager)였고,그 이전에는 사장(President)이었다. CEO란 무엇인가? 말은 생각을 담고 있는 그릇으로서 시대적 추세를 표현한다. 그렇다면 ''지식사회의 지식기업''에 있어 CEO란 과거의 최고경영자 또는 사장과 어떻게 다를까.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까지도 서구에서 ''경영학''은 아직 하나의 뚜렷한 학문분야가 아니었다. 주먹구구식 경영 대신,프레드릭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Scientific Management)이 겨우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 당시 사람들이 톱 매니저(Top Managers)라는 말을 할 때 그것의 진정한 의미는 ''건물의 제일 높은 층에 있는 큰 사무실에서 일하는 지체 높은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1960년대 들어 경영자들이 대거 생겨나자,학자들은 이 분명한 새 현상에 대해 정의를 내릴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등장한 최초의 정의는 ''경영자는 지위와 권한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경영자는 부하를 거느린 사람,즉 보스(Boss)였다. 하지만 이 정의는 잘못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권한은 책임과 등가관계에 있다''는 사회과학의 제1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그 후 새로 등장한 정의는 ''경영자는 부하가 수행한 과업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이 정의는 산업사회에서는 비교적 타당한 것이었다. 산업사회의 경영자가 수행하는 일은 이미 정해진 과업을 잘 수행하기 위해 부하에게 명령하고,또 부하들이 일을 제대로 하는지 감독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이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했다는 말,"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라는 것도 바로 그런 뜻이었다. 그런데 이 정의도 이제 시대에 뒤진 것이 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보다 열심히 일하기(working harder)''에서 ''보다 현명하게 일하기(working smarter)''시대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피터 드러커는 "지식사회에서의 경영자는 지식을 목적 지향적 행동으로 구체화하는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자본과 노동이 생산요소인 산업사회의 최고경영자는 자본과 노동을 생산성 있는 곳에 배분하는 책임을 졌다. 같은 논리로,지식이 중요한 생산요소인 지식사회의 CEO는 지식을 분배하는 책임을 진다. 산업사회의 노동자와 시민은 지도자가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되었다. 그러나 지식사회의 근로자는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업무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지식근로자는 감독을 할 수 없다. 1960년대 사회과학분야의 교수들은 경영이 과학(science)인지,또는 돈을 벌기 위한 단순한 기능(art)인지 진지하게 논쟁을 벌였다. 하지만 이는 부질없는 짓이었다. 왜냐하면 경영은 의학 법률 공학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실무(practice)이자 기능이기 때문이다. 실무란 이론(theory)을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이론은 타당성이 있어야 하고 또 증명될 수 있는 과학이어야 한다. 요컨대 ''전통적인 지도자''는 카리스마적 성격에 전권을 쥐고 부하들에게 권력을 휘두르는 우두머리였다. 그러나 ''지식사회의 CEO''는 지식근로자가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앞에서 끌어주고,뒤에서 지원하는 ''서번트(servant)''여야 한다. Jklee480808@hanmail.net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