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北京) 거리에 나서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벤츠를 타고 다니는 부유층이 있는가 하면,그 옆에는 인력거를 밀고 가는 막노동꾼도 있다. 정장 차림의 샐러리맨,거리를 배회하는 실업자,행인에게 손을 내미는 걸인(乞人)등도 눈에 띈다. 시내를 벗어나면 금방 초라한 차림의 농민을 만나기도 한다. 개혁·개방 과정에서 나타난 계급 분화의 결과다. 그럼에도 중국 공산당은 공식적으로는 이 같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중국에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계급이 있다면 노동자계급과 농민계급이 있을 뿐이다"라는 게 그들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행정관리 대학교수 등도 노동자·농민계급의 한 부류로 여긴다. 지난 1949년 공산당 정권 수립으로 계급이 타파됐다는 얘기다. 그런데 중국의 '국가 싱크탱크'격인 사회과학원이 최근 이를 바로잡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당대 중국사회 계층 연구'라는 제목이었다. "사회에 실제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계급을 인정해야 한다"는 게 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보고서는 현존하는 계급으로 10개를 들었다. 국가사회의 영도자,기업 관리자,사영기업 소유자,전문기술 종사자,행정 공무원,거티후(個體戶·소규모 자영업체)소유자,서비스업종 종사자,공장 근로자,농민,무직·실업자 등이 그것이다. 사회과학원은 특히 소득수준의 계층이 존재한다고 인정했다.보고서는 '각 계급 분화와 함께 자산 보유정도가 선명해졌다'며,가진 자와 소외계층이 공존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또 소득수준에 따라 '상층-중상층-중중층-중하층-저층'등으로 계층을 구분했다.공산당이 주도한 무산계급 혁명으로 타도됐던 유산계급이 재등장했음을 공식화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공산당이 추진하고 있는 당 체질변화를 뒷받침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공산당은 '노동자 농민뿐만 아니라 자산계층도 우리편'이란 '3개대표(3個代表)론'을 내세워 변혁을 시도하고 있다. 사회 각 계층의 존재를 인정,변혁의 근거를 제공하자는 게 이 보고서의 목적이다.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중국 공산당은 이렇게 유연해지고 있다.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