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욱 < 삼성종합기술원 원장 > 21세기는 과학기술의 시대다. 과학기술은 모든 산업경쟁력의 근본이다. 기술력이 바로 기업,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기술혁신 시스템은 이미 개선이 아닌 혁신만이 생존할 수 있다는 4세대 연구 혁신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1.5세대 정도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얼마나 빨리 제2, 제3세대를 졸업하고 제4세대에 동참하느냐에 위기 극복, 선진 한국의 꿈이 달려 있다. 우리는 지난 40년간 산업화와 수출 입국을 기치로 고속 성장의 길을 달려 왔다. 하지만 지금 성장 동력을 상실할 위기를 맞고 있다. 기술 집약적이고 지식기반 산업이 발달된 일본과 막강한 제조 경쟁력을 바탕으로 놀랍게 성장하는 중국의 틈바구니에 낀 넛크래커(Nut Cracker) 신세가 됐다. 한국은 세계시장 수출경쟁력 1위 상품 수가 중국의 6분의 1, 대만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또 첨단기술이면서 일본과 비교해 경쟁우위에 있는 품목은 액정표시장치(LCD)와 반도체 뿐이다. 기업부설 연구소가 5천여개라고 하지만 원천 특허를 보유한 경우는 많지 않다. 따라서 이제는 기초 연구를 활성화하여 제품 및 공정 혁신에 도전해야 한다. 연구개발의 생산성을 혁신시키면서 연구소를 돈 버는 곳으로 변화시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21세기는 고객의 시대다. 고객 만족과 고객 감동, 고객의 가치 창출이 경쟁력의 근본이다. 가치혁신(Value Innovation)이 최우선의 화두가 돼야 한다. 기술혁신 없이는 가치혁신을 이룰 수 없다. 또한 고객이 필요로 하는 사업성 있는 연구가 돼야 한다. 이것이 4세대 연구혁신이다. 연구개발이 기술혁신뿐 아니라 가치혁신을 동시적으로 추구하는 R&BD(Research & Business Development) 활동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미다. 가치혁신의 대명사인 일본 소니는 1955년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출시한 이후 최근 전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로봇 '아이보'까지 5년에서 10년마다 혁신적인 신개념의 제품을 내놓고 있다. 이런 혁신 제품으로 인해 소니는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한때 엄청난 격차가 나던 거대기업 마쓰시타와 현재 매출액을 비교하면 대등한 수준까지 발전했다. 미국의 한 대학도 가치 혁신의 중요성을 체험적으로 일깨워 주고 있다. 10년전 MIT대학 기계공학과 학과장을 맡은 한국인 서남표 교수는 자리에 앉자마자 기초 연구와 기술혁신의 어중간한 상태를 지양하고 양극단을 중시하는 혁신을 시도했다. 그는 IT(정보기술) NT(나노기술) BT(바이오기술)를 전공한 기초 연구자와 혁신 전문가를 신임 교수로 채용, 기존 기계공학 전공 교수와 기술 융합을 통한 시너지를 창출토록 했다. 이 작업은 지난 10년간 수많은 혁신과 성과를 이뤘고 MIT 기계공학과를 명실공히 세계 최고로 이끌었다. 21세기는 우리에게 주어진 좋은 기회다. 2015년께면 세계 최대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IT NT BT 등 신기술과 신산업의 성장은 우리에게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 선진국과 같은 시기에 출발선에 서 있다. 우리도 기회만 잘 활용한다면 선두그룹에 설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는 이미 IT산업의 고속 발전을 통해 새로운 것에 대한 우리의 빠른 적응력을 확인하고 있다. 이러한 기회를 잘 활용하기 위해선 새로운 기술혁신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며 지금은 시스템 구축의 최적기다. 우선 국가 장기 발전의 비전과 전략을 명확히 해 전국민과 함께 해야 한다. 비전과 목표는 국민의 지혜와 힘을 한 방향으로 집결하는 원동력이다. 나눠먹기 식은 절대 금물이며 전략적 포트폴리오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둘째 산.학.연 공히 연구개발 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 초일류 목표에 도전하며 과학적.합리적 프로세스를 도입하는 등 연구 주체가 스스로 혁신의 주체가 되어 세계적 수준의 연구역량을 키워 나가도록 해야 한다. 셋째 대학을 비롯한 교육시스템의 혁신이 필요하다. 전문 기술뿐 아니라 창의력과 도전정신,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과학적 연구방법론과 사고방식을 갖춘 전문 인력이 양성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과학기술만이 생존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국민적 공감이 필요하다. 젊은이들이 과학기술자가 되기를 원하고, 또 과학기술자가 존경받도록 기술중시 문화가 고양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