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 퇴출명단이 3일 발표됐다.

이번 부실기업 선정은 지금까지 지지부진했던 부실기업의 정리와 제2의 경제 구조조정이 시작되는 계기가 될수 있으리란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기업자율에 의한 퇴출이라기 보다 정부에 의해 주도된 퇴출이라는 측면에서 비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재처럼 왜곡된 시장유인으로 말미암아 시장기능이 제대로 작동치 않을 경우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것도 불확실성을 제거한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특히 우리 경제처럼 기업들이 은행부채에 크게 의존하는 경우 기업부문의 부실은 고스란히 금융부문의 부실로 전가되기 때문에 금융구조조정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가 금융부실의 근본원인인 기업부실 제거작업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부실기업 퇴출판정을 보면서 부실기업 선정이 과연 시장원리와 경제원칙에 맞게 이뤄졌는가란 의문을 감출수 없다.

이번 부실기업퇴출은 지난 8월부터 공개리에 진행됐기 때문에 정부와 채권단, 정치권의 이해관계 속에서 정치적 영향력이 개입할 여지가 컸었다.

현대건설만 해도 그렇다.

여러가지 설이 난무한 가운데 현대건설에 대한 결정은 유보됐다.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대건설이 지금까지 네번이나 자구안을 내놓았지만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 것이 별반 없다는 사실은 원칙에 입각한 현대문제 처리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현대건설의 퇴출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수습하기 힘들 정도라고 정부와 채권단이 판단한다고 해도,최소한 가신 경영진의 퇴진과 대주주의 경영권을 제한하는 조건하에서 지원이 이뤄졌어야 할 것이다.

부실 대기업을 근본적인 수술없이 계속 살려두는 것은 향후 우리경제에 더 큰 충격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번 부실기업정리와 관련해 또 하나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점은,앞으로 어떻게 이런 부실기업들이 계속 생겨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지난 98년에도 이번과 유사한 정부주도의 부실기업 퇴출이 있었지만,2년이 지난 오늘도 또 정부가 나서서 부실기업 퇴출을 주도하고 있다.

더 이상의 대규모 강제 퇴출을 막기 위해서는 왜 계속 부실기업이 생겨나고 있고,또 이런 기업들이 왜 시장원리에 의해 퇴출되지 않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해봐야 할 것이다.

부실기업이 계속 생겨나는 것은 기업들이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다.

이자율 하락과 환율 상승,그리고 세계경제의 활황이라는 거시 변수에 의해 이뤄진 지난해의 높은 성장을,많은 기업들은 자신들의 기술 및 제품 경쟁력이 강화된 것으로 오해하고 철저한 구조조정을 수행하지 않았다.

또한 부실기업들도 화의 및 워크아웃제도를 교묘히 활용하면서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고 덤핑 등을 통해 오히려 건전한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켜왔다.

기업 구조조정의 미흡은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기업 리더십의 부재와 책임경영을 불가능하게 하는 기형적인 기업지배구조에서 연유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부실기업이 퇴출되지 않고 연명할 수 있었던 주요 이유는 오래되고 효율적이지 못한 퇴출제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기업부실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책임경영제도가 정착될 수 있는 건전한 기업지배구조 확립에 힘써야 할 것이다.

또한 화의 법정관리 등의 기업 퇴출제도를 재정비하고 그 요건을 엄격히 해야 할 것이다.

이번 퇴출은 협력업체 연쇄 부도 등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직장에서 내몰게 될 것이다.

하루 빨리 제대로 된 사회안전망이 구축돼 실직자들이 큰 고통없이 새로운 직장을 찾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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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약력=△서울대 경영학과 △美코넬대 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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