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최형식은 순간적으로 그 소리가 자신의 차 모서리에 받힌 이정숙의 몸이 공중으로 튀었다가 떨어지는 소리임을 알아챘다.

최형식은 차를 세웠다.

주차장 안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차 뒤창으로는 넘어져 있는 이정숙의 모습이 보였다.

이정숙의 몸이 꿈틀거렸다.

최형식은 차에서 급히 내려 이정숙이 쓰러져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이정숙이 그를 향해 고개를 들려다가 고개를 아래로 푹 떨어뜨렸다.

정신을 잃은 듯했다.

최형식은 이정숙을 안아들고 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차 뒷좌석으로 이정숙을 밀어넣었다.

이정숙의 신음소리가 희미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호텔 주차장에서 빠져나와 신호등 앞에 정차한 순간 최형식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뒷좌석 쪽에서 이정숙의 신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왔으나 그 소리가 점점 약해져갔다.

이정숙이 곧 숨을 거둘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신호등이 바뀌자 그는 차를 급히 출발시켰다.

사거리 한 모퉁이에 있는 병원으로 갈 참이었다.

병원 주차장 한쪽 텅 빈 곳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려 뒷문을 열었다.

이정숙을 안아 일으키려는 순간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이정숙의 가슴에 귀를 대어보았다.

이정숙의 몸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최형식은 그녀의 몸을 우악스럽게 흔들었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는 뒷좌석 안으로 들어가 차 문을 닫았다.

이정숙을 누이고 그녀의 가슴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두 주먹으로 연거푸 내려쳤다.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정숙이 숨을 거둔 듯했다.

"죽지 마,죽지 마,제발 죽지 마"

그는 이정숙의 어깨를 잡아 흔들면서 울부짖었다.

잠시 후 최형식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이정숙 옆에 넋을 잃은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살인자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의머릿속에서는 과거 경험한 혹독한 감옥생활이 떠오르고 있었다.

"자살"이라는 단어가 뇌리를 스쳤다.

그는 이정숙을 뒷좌석에 누인 후 차 밖으로 나와 운전석에 다시 앉았다.

뒤로 고개를 젖히고 눈을 감았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자살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1880년대 초 노동운동을 하다가 구금되어 혹심한 고문을 당했을 때도 자살하겠다는 마음은 추호도 들지 않았었다.

아니,자살을 생각하기는커녕 반드시 살아야 되겠다는 의지만이 강했었다.

다수인 노동자가 소수인 부르주아를 언젠가는 반드시 이기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고,그날을 꼭 맞이해야겠다는 의지가 앞섰었다.

그러나 지금 순간적으로 자살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기는 했으나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머지않아 북한에 계신 아버지를 만나뵈어야 했고,또 아들을 혼자 이 세상에 남겨둘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누군가 의논할 사람이 필요했다.

일단 황무석에게 전화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황무석의 핸드폰은 전원이 꺼져 있었다.

다음으로 누구와 의논할까 생각해보았다.

자신이 속한 연구소의 소장으로 있는 권 의원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노동자의 이익을 위해 앞장선다는 배운 자들의 거의 대부분은 노동자들이라는 약자들 속에서 달콤한 우월감을 향유하는 약아빠진 자라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고,권혁배도 예외가 아닌 듯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