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원주 < 채티비 대표 >

서울대 재학시절인 93년 가을 레포트 작성 등을 목적으로 전산실에 자주 드나들면서 자연스럽게 인터넷을 접하게 됐다.

유즈넷에 접속해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한 캐나다인이 써놓은 글을 보았다.

수개월내 한국에 올텐데 짧은 시간안에 한국 여자를 사귀어 육체적인 관계를 맺고싶다며 경험있는 사람의 조언을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격분하는 마음에 "너 같은 사람이 오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내용의 답장을 보냈다.

그랬더니 세계 각지의 네티즌들이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는 항의의 글을 올렸다.

이 경험은 인터넷을 통해 얼굴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으며 세상 사람들은 서로 다른 정서와 마인드를 갖고 산다는 문화적 충격을 안겨 줬다.

평소 방송분야에서 일해보고 싶던 나는 인터넷의 진가를 알고는 방송과 인터넷이 결합된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졸업을 앞두고 인터넷방송을 소개하는 기사를 봤다.

간단한 장비만 있으면 1인제작 시스템과 웹기술을 이용해 인터넷방송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인터넷방송사를 창업하기로 작심했다.

그러나 의욕은 불탔지만 실무지식과 자금 어느 것 하나 없었다.

서강방송아카데미에 들어가 방송 실무지식을 배우고 Qnet 이란 곳에서 인터넷방송 PD로 방송 제작과 멀티미디어 작업을 맡았다.

IMF 경제체제의 어려움이 극에 달하던 지난 98년 여름 더이상 나빠질 것이 없다는 판단 아래 인터넷방송 창업을 결행했다.

친구와 선배들로부터 2천만원을 끌어모아 보증금 3백만원짜리 오피스텔을 얻고 인터넷전용선과 PC서버 한대,작업용 PC,소형 디지털비디오카메라를 구매했다.

각자 집에서 쓰던 PC 냉장고 주방기구 오디오 등을 모아 회사 집기로 썼다.

매일 새벽5시까지 일하고 소파 겸용 간이침대에서 눈을 붙인 다음 오전 10시부터 다시 업무를 시작했다.

일은 힘든 줄 몰랐지만 처음하는 사업이 쉽지만은 않았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할 꽃을 공급해줄 업체를 찾고 있을 때였다.

꼭 섭외를 해오겠다고 호언장담하고는 무작정 대학가를 헤맸다.

그러다 이화여대앞에서 "예삐꽃방"이라는 체인점을 운영하는 분을 만나게 됐다.

인터넷방송과 전자상거래 멀티미디어에 대해 설명을 하고 "채티비"의 포부를 말씀드렸다.

예삐꽃방 사장님은 흔쾌히 상품 공급 계약서에 도장을 찍더니 개점 이벤트 선물로 장미꽃 1천송이를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3개월동안 쇼핑몰 상품을 끌어모으고 콘텐츠 개발 작업을 한끝에 98년 12월17일 "국내 최초의 인터넷 홈쇼핑 방송,네티즌이 만들어가는 방송"을 모토로 인터넷방송국 채티비를 드디어 개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