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 단체가 제정해 지난 3일 시상할 예정이었던 "장애우인권상"
수상을 거절한 엠마우스 복지관의 천노엘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장애인들은 제게 삶의 의미를 일깨워 주었고, 지난 40년 동안 너무 많은
빚을 졌습니다.

장애인들에 대한 봉사를 이유로 상을 받을수 없습니다"

40년을 낯선 이국땅에서 타국의 장애인들과 같이한 아일랜드 신부의
한마디는 IMF의 한파로 움츠러든 우리의 가슴을 따스한 온기로 채워주었다.

그러나 그가 말한 빚은 참으로 필자를 포함한 우리 국민이 져야만 할
빚이다.

우리가 보살피고 베풀어야 할 장애인에 대한 사랑의 몫을 그를 통해 빚진
것이다.

지금 IMF의 구제금융은 우리 모든 국민에게 괴롭고 매운 시집살이를
감내하며 살기를 바라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을 통한 대량실업과 임금동결, 긴축재정으로 인한 금리상승과
세율 인상이라는 참으로 혹독한 고통의 분담이 우리 모두에게 다가오고
말았다.

그러나 차가운 겨울바람과 얼어붙은 경제위기 속에 우리의 마음마저 차갑고
냉랭해지기를 필자는 바라지 않는다.

아직도 우리의 따뜻한 마음과 사랑을 기다리고 소원하는 우리의 이웃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져야만 할 사랑의 짐을 어렵고 힘든 경제 탓으로 외면해 버린다면
결국 우리는 경제 위기로 인한 IMF의 빚과 함께 또 하나의 사랑의 큰 빚을
지게 되는 것이다.

요즘 초등학교에는 "아나바다 운동"이 한창이라고 한다.

아끼고, 나누고, 바꾸고, 다시 쓰자는 절약 운동을 일컫는 말이다.

이처럼 닥쳐온 경제의 시련과 고통을 나누는 일에 너와 나가 없듯이
이웃을 향해 사랑을 나누는 공간에도 너와 나가 없기를 조심스레 소망해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