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엊그제 독도의 접안시설 준공을 계기로 또다시 독도가
"자기 고유의 영토"라는 종래의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접안시설을
철거하라는 망발을 서슴지 않음으로써 경악을 금치못하게 하고 있다.

독도는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보더라도 한국영토임이 너무나 분명하다.

독도의 옛 명칭은 우산도였다.

"세종실록" 지리지 (1432년 편찬)에는 "우산.무릉 두 섬이 울진현의
정동해중에 있다", 또 "고려사" 지리지 (1451년 편찬)에는 "우산.무릉은...
날씨가 맑으면 바라 볼수 있다"고 기록되어 울릉도 (무릉)와 함께 독도가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

그보다 앞선 1425년 (세종7) 울릉도에 파견된 우산무릉등처안무사라는
관직명에서도 이를 뒷받침해 준다.

1463년 (세조9)에 왕망으로 제작된 한국 최초의 실측지도인
"동국지도"에도 울릉도와 우산도의 위치 및 크기가 정확하게 표시되어
한국영토임을 분명히 해주었다.

반면 일본은 1905년 2월에야 각의 결정과 시마네현 고시로 죽도 (독도)를
영토에 편입시키는 조처를 했다.

일본은 17세기초에야 독도를 처음 발견했지만 그 이후 막부의 공인아래
울릉도해역에 대한 운항면허를 받은 일본어민들이 독도주변을 어로수역으로
다른 나라와의 경합없이 전용했고 한국은 1430년부터 3백년간 울릉도의
공도정책으로 영유권을 방기했기때문에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는 일본이
독점한 상태였다는 억지 주장을 폈던 것이다.

당시 외교권을 일본에 박탈당한 한국으로서는 그에 대한 반박이 불가능
했다.

한국의 울릉도 공도정책이 견지되던 1693년 (숙종19) 일본에 피랍된
동래출신 어부의 울릉도 영유권 주장을 계기로 일본 막부가 그 3년뒤
죽도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인정하여 어민의 도해금지령을 내렸던 일을
은폐한 교언이었다.

일본은 아직도 독도가 자기네 영토라는 망상을 버리지 못해 엊그제
완공된 접안시설을 철거하라는 얼토당토않은 요구를 해왔다.

준공식을 현지가 아닌 울릉도에서 거행하고 식 참석차 내려가던 장관을
불러 올리는 따위의 미온적 정부대응에 실망감을 느낄 따름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