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이 14일 국민회의 김대중총재 친인척의 비자금을 폭로하면서
구체적인 계좌번호를 밝혀 금융실명제의 "비밀보장"에 구멍이 뚫려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계는 누군가가 실명제를 위반하지 않고는 3백42개에 달하는 계좌번호나
입금액을 일일이 알아낸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행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경제명령" 4조1항에는
금융기관 종사자가 명의인의 서면상 요구나 동의없이는 금융거래의 내용에
대한 정보 또는 자료를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거나 누설할 수 없도록 돼있다.

또 누구든지 금융기관 종사자에게 정보 제공을 요구해서도 안된다.

물론 법원의 제출명령 또는 법관이 발부한 영장이 있는 경우, 조세에 관한
법률 규정에 의한 질문.조사를 위해 소관관서의 장이 요구하는 경우,
재정경제원장관.은행감독원장.증권감독원장.보험감독원장이 감독.검사차원
에서 정보 등의 제공을 요구하는 경우는 예외다.

따라서 신한국당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비자금 관련자금들 신한국당에
넘겨준 실명제 위반에 연루될 가능성이 높다.

우선 금융기관 종사자가 관련 금융자료를 신한국당측에 넘겨줬다면 이는
명백한 실명제 위반이다.

실명제를 위반하면 12조 벌칙조항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또 신한국당 관계자가 금융기관 종사자에게 자료 제출을 요구했을 경우도
4조1항에 규정된대로 처벌을 받게 된다.

금융계는 신한국당이 금융기관 종사자에게서 직접 자료를 빼내기 보다
은감원 등 관계당국의 힘을 빌어 정보를 입수했을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에도 감독.검사에 필요한 자료제공 요구가 아니라는 점, 또는 목적
이외의 사용이라는 점에서 감독당국자들은 실명제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밖에 없다.

정보기관이 검찰이나 금융기관에 자료를 요구했다면 정보기관은 물론 관련
금융기관도 실명제를 위반한 셈이다.

만일 신한국앙이 직접 자료입수에 관여하지 않았다면 실명제 위반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번 신한국당의 잇따른 비자금 폭로로 실명제의 비밀조항이
유명무실하다는 것이 실증돼 금융실명제의 근간이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이
금융계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5일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