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오래 산 외국인들은 공통적으로 한국부모의 교육열이 지난
수십년동안 한국발전의 원동력이 된 것이 사실이지만 현재의 교육체계와
행태가 계속되는 한 미래의 전망은 그리 밝지 못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학자와 당국은 그 원인은 진단하지 않은채 한국의 과외병은
오랜 관습에서 온 역사의 병이라고 평한다.

한국은 조선시대부터 유교 교육을 받아 왔다.

공자의 사상을 근간으로 사농공상이라 하여 농사짓고 물건 만들고
장사하는 이들을 비생산적인 선비보다 하층계급으로 두었다.

사서삼경을 외워 과거에 합격해야 중앙의 관계로 진출해 가문의 명예를
높이고 한평생을 상류층으로 살면서 부와 명예를 얻었다.

서구에는 과거시험이라는 것이 없었고 전쟁에 나가 적을 무찌르고 돌아오면
기사 작위와 영토를 얻어 영주과 되고 귀족이 되었다.

책을 외워 지도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사람의 업적에 따라 인물이
평가됐다.

영국인 한사람은 이렇게 진단한다.

조선왕조가 무너지고 일제식민통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한국사회의
전통적인 반상의 신분계층 구조가 와해됐는데 전후 급속한 산업화로
사회계층이 미처 정해지지 않아 일류대학 진학후 고위 관료가 되면
상류사회로 쉽게 진입할 수 있었다.

영국에 과외가 없는 것은 사회계층이 정해져 있어 교육을 많이 받는다고
상류사회에 진입할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제의 해결책은 교육의 목표를 바꾸는 일이다.

교육의 목표를 어려운 전인교육 인성교육이 아니라 "남에게 보탬이 되는
사람 기르기"로 정해야 한다.

"남보다 잘난 사람 기르기"를 교육의 목표로 할 경우 과외병은 결코
치료될수 없다.

"더불어 잘살자"고 가르치는 것이 교육 아닌가.

개인이 가진 모든 재능을 찾아내 개인의 발전과 사회에 기여하도록
하는 쪽으로 교육의 목표를 바꿔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