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경제는 총체적 부실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경제가 이렇게 되기까지는 여러 요인이 있었겠으나 아주 단순화시켜
다음과 같이 분석할수 있다.

즉 60, 70년대에는 우리 경제의 부와 소득이 개인이나 가계로부터
기업쪽으로 이전되었다.

노동운동의 억압과 저임금의 지속, 금리규제와 인플레를 밑도는 은행금리로
생산에서 발생하는 부와 소득이 노동자 예금자에게 제대로 분배되지 않고
기업의 이윤으로 돌아갔으며 이에따라 기업은 투자를 확대하고 성장하였다.

그러나 80년대 중반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부와 소득의 이전이 오히려
기업으로부터 개인이나 가계쪽으로 이루어졌다.

노동생산성을 웃도는 임금, 자본의 수익률보다 높은 금리는 기업에 이윤을
남겨두지 못하였고 기업은 새로운 투자를 거의 외부차입에 의존하였다.

부동산가격의 거품은 기업이 영업수지에서 실질적인 적자를 보더라도
담보가치의 상승으로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차입증대를 쉽게 해주었으며
이에 따른 신용팽창은 다시 부동산 수요확대와 자산인플레 거품현상의
지속으로 이어졌다.

우리경제의 생산능력에서 나오는 실질적인 부가가치보다 더 높은 임금
금리, 그리고 부동산가격의 폭등에서 오는 높은 임대료수입으로 국민들은
그동안 능력에 넘치는 소비수준을 누려왔다.

그 결과는 대외적으로 국제수지적자의 확대를 가져왔고 이는 해외자본유입
및 외채 누적으로 지탱되어 왔다.

그러나 경제에 공짜 점심은 없다.

지난 약10년간의 우리의 능력한계를 넘는 수입과 지출행위는 기업의
채산성및 재무구조 악화로 전가되었고,이는 다시 고스란히 우리 금융기관의
부실화로 전가돼가고 있다.

최근들어 잇단 대기업들의 부도는 그동안 누적되어왔던 부실이
국내경기 하강 및 수출가격하락 등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하는 것으로서
앞으로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전개될 수도 있다.

이미 우리 금융기관및 기업들이 해외에서 빚을 얻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현재 우리는 새로운 경제질서확립을 위해 각 부문에서 자유화와 개방화를
추구해나가지 않으면 안되며 우리가 처한 국제적인 환경도 이를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또한 우리가 분명히 인식해야할 것은 이러한 자율화가 가져올수
있는 단기적인 파장이다.

자유화되고 건전한 자본시장은 기업의 4백~5백%의 부채비율을 용납하지
않는다.

선진 외국 기업들이 이자예금에 대한 조세감면 등 혜택에도 불구하고
낮은 부채비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높은 부채비율로서는 항상 부도위기에
직면하게되고 또한 자본시장에서 자본조달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융자율화가 진행되면 우리기업들의 부채비율은 훨씬 떨어지지
않을수 없다.

그 과정에서 우리기업들은 투자를 위한 재원조달을 주로 내부금융에
의존할수밖에 없다.

그 결과 한계기업의 도산, 고용기회축소 등 상당기간 경제침체가 지속될
가능성도 있다.

오늘날 우리경제가 부실화되었던 근본적인 요인은 위에서 말한 임금 금리
지대 환율 등 상대가격구조의 왜곡에 있었고, 따라서 우리경제의 구조조정은
이러한 왜곡된 상대가격구조의 시정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대가격구조의 조정은 자칫 잘못하다가는 단기적으로
오히려 균형을 크게 이탈할수 있고 부실과 도산을 가속화시켜 커다란
조정비용을 수반하게 한다.

특히 이러한 상대가격구조의 조정이 시장자유화와 맞물려 돌아갈때
그 위험은 더욱 높아진다.

이는 이미 여러 국가들에서 경험한바가 있다.

경제가 이러한 상황에 처했을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의 위험관리
(risk management)능력이다.

이러한 위기관리능력은 첫째 문제의 본질을 적시에 파악하고, 둘째 그것이
확대되지 않도록 거시경제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며, 그리고 이미 이루어진
손실을 경제주체들간에 적절히 배분하는 능력이라 할수 있다.

과거에도 우리경제는 몇차례의 위기를 맞았다.

그럴 때마다 우리정부가 대처해나간 방법은 강제적인 시장개입이었다.

8.3긴급조치로 초법적인 사채동결도 하였고 강제적인 금리인하, 기업들의
강제합병, 특융 등으로 위기를 넘겨왔다.

그리고 그 부담은 주로 인플레를 통한 실질임금 하락으로 근로자및
저축자에게 전가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종전과 같은 위기대처방식은 통하지 않게
되어있다.

개방경제에서의 금리인하 인플레가속은 오히려 구조조정을 위해 필요한
자금동원을 어렵게 하고,다원화되고 민주화된 사회에서 강제적인 인수
합병이나 가격조정은 이해 당사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질수 없다.

또한 WTO등 국제 규범도 종래와 같은 방식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우리에게 닥칠지 모르는 위기상황에서 과연 어떤
정책수단을 동원할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 정부는 많은 개혁조치들을 내놓고 있다.

각 부문의 논리로 보았을 때는 타당한 이러한 개혁조치들이 거시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과연 이 시점에서 긴급히 추진되어야 하는 과제인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또한 각종 개혁조치들이 가져올수 있는 상호작용을 잘 예측하여 정책간의
조화가 이루어지도록 하고 우선순위를 정해 자칫 왜곡된 분배나 가격구조를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게 경계해야 한다.

지금 우리 정부가 어떤 정책조합을 취하고 어떻게 각 정책추진의 완급을
조율해나가는가에 따라 우리가 지불해야 할 조정비용의 크기가 결정될
것이다.

호미로 막을수 있는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결과가 초래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