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색 적색 에메랄드 청보라..."

갈색(맥주)과 무채색(소주) 일변도였던 술시장이 다양한 색깔로 채색되고
있다.

프리미엄 맥주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주류업체들의 색깔경쟁은 이제
소주시장으로까지 확산됐다.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색깔의 술이 선을 보여 소비자들의 시선을 황홀케
하고 있다.

주류메이커간 색깔경쟁은 "색깔파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치열하다.

진로쿠어스의 붉은색 맥주 "레드락"처럼 맛과 병모양은 말할 것도 없이
술색깔 자체를 차별화한 제품이 등장했을 정도다.

색깔경쟁은 맥주에서 시작됐다.

색깔파괴의 테이프를 끊은 제품은 OB맥주의 "카프리".

OB는 카프리를 투명한 병에 담아 "맥주병은 갈색이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과감히 무너뜨렸다.

고급스럽고 세련된 느낌의 투명한 병을 사용함으로써 맥주의 황금빛을
더욱 부각시켰다.

황금빛 맥주색깔은 "눈으로 마시는 맥주"라는 카프리의 이미지를 애주가
들에게 어필하기에 충분했다.

진로쿠어스도 뒤를 이어 색깔을 파괴했다.

지난 4월 국내 주류업계 최초로 붉은색 고급맥주 "레드 락"을 선보인 것.

레드락은 적색맥주로 컬러와 향이 독특해 감수성이 예민한 신세대들
사이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또 젊음과 열정의 상징인 레드 락의 이미지를 극대화하기위해 상표색깔도
암바색(붉은 갈색)으로 채색했다.

OB와 진로쿠어스에 맞서 조선맥주도 히든카드를 꺼냈다.

저칼로리 감각맥주 하이트 엑스필이 그것이다.

엑스필은 기존의 갈색병 대신 에메랄드빛(진녹색)병을 채택하고 상표를
진청색과 흰색을 붙여 한 제품이 두가지 색깔감각을 갖도록 했다.

맥주회사들은 이같은 색깔경쟁 외에 병뚜껑과 원료 제조방식 패키지 등의
차이도 부각시켜 신세대소비층을 끌어들이는데 주력하고 있다.

카프리와 엑스필은 우선 국내최초로 병마개를 손으로 돌려따는 트위스트
캡을 채택했다.

병따개가 필요없는 트위스트캡을 부착함으로써 번거로움을 싫어하는
신세대의 취향을 만족시켰다.

레드락은 알코올도수와 원료에서 경쟁제품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우선 알코올도수를 카프리(4.2도)와 엑스필(4.1도)보다 높은 5도로
책정했다.

또 일반맥주에 비해 맥아 사용량을 늘리고 붉은 색을 내기위해 암바볼트를
10% 사용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숙성기간도 늘려 마실 때 목넘김이 부드럽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엑스필은 저칼로리맥주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칼로리를 줄이기위해 SAB공법을 사용했다.

이 공법은 발효성 당의 함량을 극대화한 맥즙을 고발효시키는 제조방식으로
맥주에 잔존하는 칼로리를 최대한 제거할 수 있다.

3백30m리터엑스필 한병의 칼로리함량이 30.9Kcal로 경쟁제품보다 낮은
것도 이 때문이다.

엑스필은 일반맥주 보다 맛이 상쾌하고 깨끗할 뿐아니라 건강을 생각하는
현대인에게 적합한 다이어트맥주라는 새장을 열었다.

하이트 엑스필은 병디자인도 기존 맥주병과 달리 목이 긴 롱넥스타일이며
목부분을 엠보싱(양각)처리해 음용편의성을 높였다.

조선맥주는 엑스필의 주소비층을 20대 남녀 대학생과 직장인으로 설정하고
병따개가 필요없는 에메랄드빛의 감성맥주라는 제품컨셉트를 집중 어필하고
있다.

색깔경쟁은 최근 맥주에서 소주로 옮겨붙었다.

두산경월의 신제품 "청색시대"는 소주병으로는 처음으로 청보라색을
채택했다.

깨끗한 제품 이미지와 함께 주소비층이 25~34세의 젊은층이라는 점을 감안,
젊음의 색깔인 푸른색에 고급스러움과 부드러움을 나타내기위해 보라색을
섞었다는 것이 두산경월측 설명이다.

"청색시대"를 계기로 소주병도 맑은 투명병에서 연녹색을 거쳐 다색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느낌이다.

청색시대는 과거 그린소주의 히트원동력이었던 컬러 마케팅전략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

두산경월측은 그린소주의 성공원인을 되새김질한 결과 녹색이미지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린소주는 제품전체에 흐르는 녹색이미지가 환경에 대한 국민적 관심사와
맞물리면서 단기간에 베스트셀러로 부상했다.

청색시대의 청보라색이미지는 암울한 사회적 분위기에 시원한 활력을
기대하는 소비자의 마음을 자극하고 있다.

주류시장의 색깔파괴는 술이 이제는 맛을 시각화함으로써 소비자를
공략하는 감성품목의 하나로 떠올랐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 서명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