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을 찾아 헤매는 인류의 긴 여로는 석기시대에 시작되었다.

석기시대인들이 냇물의 자갈 사이에서 반짝이는 작은 알맹이에 관심이
끌리면서부터 였다.

그 알맹이를 망치로 두들겨 장신구를 만들었던 것이다.

19세기 미국에서 금광이 발견된 지역으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골드러시가
일어나면서 금 채굴은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골드러시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비롯되었다.

1848년 제임스 마샬이라는 사나이가 새크라멘토에 가까운 클러머의
아메리칸강 지류에 있는 물레방아의 물길에서 부드러운 화강암 틈에
묻혀 있던 누런 금속덩이 한개를 발견함으로써 그 불이 댕겨졌다.

그뒤 그 주변에서 많은 금이 나오게 되자 사람들이 일을 팽개치고 금을
캐러 몰려들었다.

그 소문이 퍼지자 1849년에는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하와이 중국 등에서
약 10만명의 사람들이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왔다.

미국 동부나 유럽의 이주자들은 범선으로 남아메리카의 남단을 돌거나
뉴욕에서 육로로 파나마의 태평양 연안으로 나와 배를 타는가 하면 육로로
내륙을 횡단하기도 했다.

어느 길이나 어려움이 컸고 도중에 죽는 사람도 많았다.

그 해에 캘리포니아로 온 사람들을 "포티나이너스 (forty-niners)"라
불렀다.

캘리포니아에서는 1848년부터 58년까지 10년 사이에 약 5억5천만
달러어치의 금이 채굴되었다.

캘리포니아는 그에 힘입어 1850년 9월 미국의 한 주가 되었다.

이처럼 단기간에 인구가 늘어나 주로 승인된 예는 미국 역사에서 드문
일이다.

1858~75년에는 콜로라도 네바다 애리조나 몬태나주에서도 골드러시가
있었다.

최근에는 대부분이 사막지대인 네바다주에 때아닌 골드러시가 한창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기존 채광법으로는 캘수 없었던 먼지 크기의 금을 분리해 내는 신기술로
무장된 노다지꾼들이 몰려들어 이른바 "보이지 않는 금"을 찾아나서고 있다
한다.

지난 90년부터 시작된 이 골드러시로 미국은 남아프리카에 이어 세계
제2위의 금생산국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계에 이른 금생산에 새로운 활로를 터준 골드러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