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여사는 본성적으로 호색스런 여자답게 그생각을 먼저 한다.

"도대체 값을 어떻게 치려고 하는데?"

"반값만 받을 거유. 오늘 내가 중고시장 가서 값을 놔봤는데 이건
이름값만 가지고도 밑지지 않는 차종이랩디다. 실컷 타고 팔아도 크게
안 밑진대요"

"그러니 얼마냐구?"

사실 그녀석은 아주 오래전에 한번 지나가는 말로 순전히 뽐내기 위해
중고시장앞을 지나다가 팔려고 한다고 운을 떼어본 적이 있다.

"이거 팔면 얼마나 가나?"

그는 머리를 젤로 바싹 치켜올려 빗고 30대 중반의 신사처럼 차리고
나온 날이었다.

그의 잘 차려입은 옷매무새를 힐끔힐끔 보면서 중고시장의 브로커들은
그의 번쩍이는 비앰더블류 앞에 모여들었다.

그는 자기차를 선망하는 사람들을 보면 살맛이 났다.

3년전만 해도 비앰더블류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아주 드물었다.

서울시내에 몇대 있다는 정도로 값이 나가는 차가 바로 비앰더블류였다.

더구나 그 차는 700시리즈다.

그러니까 그는 그 차만 타고다니면 어디가나 재벌의 아들이거나 졸부의
아들로 오해되었고 그는 그것을 흐뭇하게 엔조이하면서 2년여를 보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성장한 그는 어린 나이에 몸을 팔든 무엇을 팔든
자기의 황태자병을 만족시켜야만 직성이 풀렸고 죄의식이나 사회적 도덕적
양심따위는 따져보거나 반성해볼 여지도 없이 점점 더 그러한 생활에
익숙해져갔고 몸은 병들어갔다.

에이즈라는 무시무시한 하느님의 경고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그는 공인수
박사의 병원에 가지도 않았을 것이고 의약의 발달은 그를 점점 더
방만하게, 또 끝이 안 보이는 나락으로 끌고 갔을 것이다.

그는 눈물을 훔치고 슬프게 웃으면서 박사장의 살찐 목덜미를 건너다
본다.

정말 밥맛 없는 아줌마다.

"저 누님요, 이것 새것은 한장은 간다는데요. 반값으로 팔랍니다"

"반값이면 오천만원?"

박사장은 꼬집어서 말했다.

요새는 외제차가 많이 들어와 굴러다녀서 그렇잖아도 지영웅에게 국산차
탄다고 창피를 당한후 벤츠나 비앰더블류매장에 많이 가본 후라 박사장은
결코 손해보는 일은 안할 것이다.

"요새 비앰더블류 매장에 갔는데, 삼천만원만 주고 나머지는 월부로도
살 수 있어요.

더구나 차는 무조건 새것이라야 되는데 아무리 곱게 탔어도 이건
3년이상 된 것 아니유?

그러니 다른데 가서 알아봐. 그러니까 오천을 캐시로 달라는 것
아닌가?"

속이 뒤틀린 지영웅은 싫으면 관두라는 식으로 내뱉고 싶은 것을 꾹꾹
눌러 참는다.

공박사와의 약속을 지키고 자기의 생명을 구해야겠다.

그러나 이 여자는 너무나 이골이 찼다.

"내가 제시할게. 누님도 차를 팔아야 되는 것이니까 누님차는 나를
주고요, 사천만 주세유"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