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고 답답한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노동자 파업은 해결 기미가 안보이고, 증권시장은 꽁꽁 얼어붙은 북극이다.

반도체 시세는 더 떨어질 것 같고, 외채의 부피는 눈사람 굴리기를 연상
시키고 있다.

어두운 구름 사이를 뚫고 국민의 마음을 따뜻하고 편안하게 감싸줄 것으로
기대됐던 연두 회견도 왠지 허전하기만 하다.

1년전만 해도 푸르렀던 하늘이 왜 이렇게 잿빛으로 가득 덮이게 됐을까?

낙관론자들은 단순한 경기 순환의 현상이라고 하고, 더 심한 사람들은
미국 경기가 나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비관론자들은 한국 경제 체질의 구조적 악화 때문이라고 하고, 이 체질을
바꾸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우리 경제는 심각한 위기상황에 있다고 주장한다.

양론이 다 옳은 측면을 갖고 있다.

그러나 구조적 요인들에 더 많은 비중을 두는 것이 미래를 내다보는 접근
자세이다.

구조적 요인들중 눈에 띄는 대표적이고 중요한 것들로써 "고비용.저효율의
현상"과 "상품 교역조건의 악화"를 들 수 있다.

고비용 저효율로 인해서 우리 상품들의 국제 경쟁력이 점점 약화되어
세계시장에서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상품교역조건의 악화는 우리의 산업과 무역의 구조가 적절한 속도로 고부
가가치화 되지 못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초래된 결과이다.

이로 인해서 무역수지와 기업의 채산성이 더욱 악화되었다.

"고비용.저효율"과 "교역조건악화"는 왜 심화되었는가?

지엽 말단적 이유를 우리는 나열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뿌리를 찾는 일이다.

뿌리째 뽑히지 않은 잡초는 더욱 무성하게 자라기 때문이다.

그 뿌리는 우리 모두의 "경제를 보는 눈"의 시야가 너무 짧다는 데 있다.

정치인들은 모든 경제 현안을 정치논리로 본다.

장기적 관점에서 국가 경제의 효율성을 기준으로 경제 문제를 논의하기보다
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 득실을 기준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정치인들의
일반적 행태이다.

이들의 이러한 행태는 예산안 심의 과정에 관심을 두고 보면 쉽게 눈에
띈다.

예산안이 국가경제의 현재와 미래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 기준으로 삼고
예산을 심의하는 정치인들을 발견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들의 정치논리에 바탕을 둔 "경제를 보는 눈"은 경제의 효율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고비용.저효율"은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정부는 어떤가?

제일 높은 사람 한 사람만 쳐다보고 일하는 관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정부조직과 인사제도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솔직해지기 어렵고 단기업적에 치중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경제가 매우 어렵더라도 타당성이 약한 논리를 동원하여 윗사람에게는
좋은 소식만 전하려 하고 국민을 협의 대상이 아닌 홍보 대상으로만 보려
하는 성향을 버리지 못한다.

다음 해 1월에는 어렵더라도 금년 12월의 통계치만 좋으면 평가를 잘 받을
수 있고, 웬만한 능력이 있으면 줄서기와 끈 잡기가 승진의 열쇠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정책의 비전과 우선 순위가 명확하게 제시되고,
그것이 일관성있게 추진될 수 있겠는가?

더욱이 장관 수명이 1년도 채 못되는 현실에서 말이다.

기업들의 경영형태도 근시안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

지금 세계는 경제적 국경이 사라져 가고 있다.

우리 정부도 OECD가입과 WTO참여로 경제제동와 법령을 국제규범에 맞추어
개정하는 과정에 있다.

이러한 새로운 질서는 기업에게 두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국제 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망하게 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의 기업규제와 지원이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기업들은 국제 경쟁력과 채산성의 확보를 기준으로 경영의사를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일부 기업들은 과거의 정경유착에 향수를 갖거나 국내시장
차원의 영토 넓이기에 집착하거나 어려우면 정부가 도와주겠지 하는 사고를
갖고 있다.

시장원리를 내세우며 규제를 완화하려고 주장하면서도 정부가 인위적으로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근로자들의 일과 소득에 대한 마음가짐도 시야가 짧다.

열심히 일하지 않고 많은 소득을 얻는다거나, 일하는 이상으로 소득을
얻는 것이 오랫동안 가능하다고 보는 마음이 부분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영국과 60년대 초에 이미 선진국 문턱 앞에 다다랐던 중남미 국가들이
근로자들이 이러한 마음가짐을 가졌었다.

그 결과가 오늘의 영국과 멕시코, 브라질이다.

특히 현시점의 세계는 6,70년대에 비하여 훨씬 격렬한 국가간 경쟁에
직면하여 있다.

이러한 일과 소득간의 비정상적 관계는 결국 절대소득 하락과 실업자
양산의 결과로 이어진다는 긴 안목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뿌리들이 그대로 있는 한 "금융개혁위원회"이 성과나 기업환경
개선의 효과는 단순한 가지치기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뿌리들을 혁파하려는 대통령의 외지와 국민에 대한 호소가
이 시점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깊고 길게 보는 "경제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지금부터 이러한 눈을 갖도록 하는 노력이 정치인, 정부, 기업, 근로자
모두에게 절실히 요구된다.

이러한 노력에 지도자가 앞장서 준다면 우리 모두 즐겁게 동참하리라
믿는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9일자).